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7월 1일] 법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

[데스크 칼럼/7월 1일] 법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 정문재 금융부장 timothy@sed.co.kr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나라가 표류하고 있다. 안전한 먹거리를 요구하는 소박한 마음에서 출발한 촛불시위가 이제는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폭력시위로 변질됐다. 광화문은 이제 황량하고 삭막한 거리로 전락했다. 이곳에서는 다른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배려나 이해는 찾아보기 어렵다. 증오와 분노만이 넘실댄다. 이제는 우리가 국가 운영의 기본 틀로 채택한 ‘대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마저 비틀거리고 있다. 출범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은 정부를 물러나라고 소리친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국민대책회의)’는 노골적인 정권퇴진 요구를 늘어놓고 있다. 처음에는 여론의 동향을 살펴가며 정권퇴진 요구 수위를 조절하더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퇴진을 입에 담는다. 국민대책회의는 지난달 17일에 “정권퇴진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투쟁을 확산시키자는 뜻”이라며 “정권퇴진 운동 불사는 정치적 압박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입장을 180도로 바꿨다. 국민대책회의는 지난 26일 기자회견에서 “이제 국민들이 정권퇴진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권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대의 민주주의’를 국가 운영제도로 채택하고 있다. 이는 대의 민주주의가 현대사회에 가장 적합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직접 민주주의는 민의를 가장 잘 대변할 수는 있지만 규모가 작은 공동체에서나 가능하다. 스위스의 일부 지역에서나 지역 주민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현대사회처럼 인구가 많고 복잡한 공동체를 직접 민주주의로 운영하는 것은 버겁다. 일부에서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직접 민주주의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하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은 소수의 네티즌들이 좌우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터넷상의 여론이 대다수의 의견을 반영하기보다는 소수에 의한 여론 조작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회와 정당정치를 무시한 채 그때그때의 여론으로 모든 현안을 결정한다면 중우정치만이 판을 칠 뿐이다. 더욱이 모든 현안을 집회나 시위로 해결할 수는 없다. 특정 사안을 처리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국민투표를 통해 출범한 정부를 물러가라고 한다면 상시적인 ‘무정부(無政府) 상태’만 이어질 뿐이다. 자식이 공부를 게을리한다고 항상 회초리를 들거나 야단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한다면 언제 공부를 할 수 있겠나. 한번 따끔하게 훈계를 한 후 공부를 열심히 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그게 순리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미국과의 추가 협상으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다면 일단 정부의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는지를 지켜보는 게 맞다. 현 상황에서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폭력시위는 국민의 참정권을 짓밟는 ‘반(反)민주주의’다. 국민투표를 통해 수립된 정부를 투표 이외의 다른 수단으로 끌어내릴 수는 없다. 더욱이 그 방법이 불법 폭력시위라면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된다. 폭력시위가 되풀이되다 보니 이제는 불법행위조차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국민의 혈세로 만든 버스를 망치로 때려 부순 후 “비폭력 촛불시위만으로는 더 이상 목적을 달성할 수 없어 그랬다”고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200만명의 캄보디아인을 학살한 폴 포트와 크메르 루주도 얼마든지 찬미와 칭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포트는 “인민들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새로운 캄보디아 건설을 위해서”라며 대량학살을 미화했다. 시위는 그것을 반대하는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우리가 법치주의를 채택한 것도 그래서다. 법이 없으면 시위를 할 수 있는 자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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