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돌아가는 길이 빠른길

'돌아가는 길이 빠른 길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급할수록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게 정해진 과정을 밟아가는 것이 결국 목적지까지 빨리 가는 비결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자연과학의 법칙과도 어긋나지 않는다. 혹시 매가 병아리를 낚아챌 때 공중에서 낙하해 지표면까지 오는 궤적을 추적해본 적이 있는가. 특이하게도 매는 병아리를 발견한 지점부터 병아리가 있는 지점까지 직선항로를 날아서 다가가지 않는다. 매는 공중에서 자유낙하 하듯이 하방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소위 싸이클로이드 커브로 알려진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며 병아리에게 다가간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비행하는 것이 직선으로 비행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병아리에게 다가간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매는 하방으로 낙하하면서 급속히 속도가 붙는다. 낙하에너지를 이용해 빠른 시간 내에 속도를 확보하고 그 가속도를 이용해 전진하는 것이 전체적인 시간을 줄이는 데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이 사례가 의심스러우면 직선으로 경사면을 만들어 구슬을 굴릴 때하고 오목한 커브면을 만들어서 구슬을 굴릴 때를 비교해 보면 된다. 이는 서울대 경영학과 석학이신 윤석철 교수님이 '우회축적의 원리'를 설명할 때 인용하는 사례이다. 우회축적이란 말 그대로 '돌아서 갈 때의 힘의 비축'을 의미한다. 직선항로를 택하지 않고 곡선항로로 우회하면서 그 과정에서 힘을 얻어 남은 비행을 더 빠른 속도로 완수하는 것이 우회축적의 매력이다. 이러한 우회축적이 빛을 발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기다림과 느긋함'의 미학이다. 왜 직선항로를 택하지 않느냐고 닦달하고 채근하는 분위기 속에서 우회축적을 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얼마 전 유럽 강팀들과의 평가전이 있은 후 우리 월드컵 대표팀 히딩크 감독에게 쏟아지는 찬사를 보면서 히딩크 감독의 그간의 훈련과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매스컴에서 비웃든 말든 히딩크 감독은 본인이 가진 독특한 훈련시간표대로 대표팀을 훈련시켜 왔다. 히딩크 감독의 훈련방법은 너무 원론적이고 장기적인 방식처럼 보였기 때문에 당장에 가시적인 성과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히 매스컴과 국민들의 질타가 있었고 대표팀의 운영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히딩크 감독의 경고성 항의도 있었다. 그러나 월드컵을 일주일 가량 앞둔 현재 시점에서 너나 할 것 없이 히딩크 감독의 훈련방식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히딩크 감독의 여자친구까지 문제 삼았던 일들이 무색할 정도로. 실제로 기업이 기업활동을 수행하는데 있어 자의든 타의든 우회축적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는 사례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벤처기업들이 오랜 기간동안 '돈이 되지 않는 기술'을 개발해 힘을 비축한 후에 한 순간에 시장의 강자로 급부상하는 것이다. 모방 가능한 기술을 단시간에 개발해 시장에 바로 다가서는 것보다 초기에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성도 높은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해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고객가치와 기업가치를 높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훨씬 빠른 길이다. 자본시장의 급격한 부침을 체험하고 각종 벤처 관련 비리로 인한 사회 전반의 냉소적인 시각을 경험한 벤처기업 경영자들이라면 늦어 보이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빠른 길로 우회하는 지혜와 철학의 중요성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벤처기업과 관련된 사회환경을 보면 아직도 우리에겐 기다림의 지혜가 아쉬운 것 같다. 벤처기업 투자자 및 정부 당국ㆍ금융기관 등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벤처기업들이 우회축적하는 과정에 있어 든든한 응원자로 후견하고 있다고 과연 자부할 수 있는가. 히딩크 감독의 여자친구를 문제 삼듯이 본질과는 동떨어진 부분까지 거론해가며 벤처기업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직 기초체력도 완성하지 못한 선수에게 골을 넣지 못 한다고 슈팅 연습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월드컵이 끝난 후 히딩크 감독이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주 궁금하다. 만일 16강 진출이나 경기결과에만 집착해 우리가 히딩크 감독을 다시 코너로 밀어붙이는 일이 발생한다면 앞으로 히딩크 감독 같은 명장을 스카우트하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과정에 대한 노력을 평가하지 않는 사회나 냄비처럼 쉬 달구어지고 쉬 식어버리는 사회, 한마디로 우회축적하는 동안 기다려주지 않는 사회는 극적인 성공을 누릴 자격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사회에서 꾸준히 일하는 구성원들을 낙담시킨다. 바로 가지 않고 돌아가려는 많은 중소벤처 기업인에게 힘과 용기를 실어줘야 할 때이다. /장흥순<벤처기업협회 회장>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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