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주유소 원스톱쇼핑시대 “활짝”(정유·유화)

◎내년 시장개방 “무한경쟁서 이기자”/세차서 레스토랑·할인점 기능까지/쌀·식료품·아이스크림 등/생필품 없는게 없어/현금지급기·팩시 설치/탁아방… 골프연습장…/보험업무처리·상담도은행원인 K씨. 퇴근 길에 기름이 떨어졌음을 알리는 계기판을 보면서 차를 주유소로 몰았다. 차는 주유원에게 맡기고 그는 주유소 옆건물의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아내가 적어준 메모지를 펴보면서 그는 쌀과 식료품, 화장지와 세제를 골랐다. 그리고 편의점 옆방의 휴게실에 설치된 현금인출기에서 현금을 인출하고 진열된 자동차 용품을 구경했다. 현금인출기 옆에는 팩시밀리와 복사기까지 설치되어 있다. 다시 주유소 계산대에 나온 그는 은행카드와 겸용인 주유카드로 기름값과 장본 것을 계산했다. 계산하는 동안 주유원은 차의 오일교환시기가 언제쯤이라는 것을 친절히 알려준다. 이러는 동안 그의 차는 기름이 채워진 것은 물론 세차까지 말끔히 되어 있다. 아직 낯선 모습이지만 이제 얼마후면 우리가 흔히 보게될 주유소의 풍경이다. 내년초 쯤이면 이런 주유소가 전국으로 확산돼 주유소에서 쌀이나 식료품은 물론이고 아이스크림이나 어린이 용품과 같은 일반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물품을 구입할 수 있게된다. 정유업계에 편의점과 할인점, 소매점을 주유소와 접목하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기름을 넣을 때마다 휴지나 세제와 같은 사은품으로 시작된 주유소의 휘발유 판매경쟁은 현란한 치어걸의 율동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세차, 경정비, 레스토랑, 패스트푸드에 이어 이제는 편의점이나 할인점, 농협식품점 등이 함께 설치돼 「원스톱」쇼핑을 가능케하고 있다. 이제 주유소는 더 이상 「기름을 넣는 곳」이 아니다. 주유소는 차를 한 번 몰고 들르면 웬만한 볼 일은 모두 보고 나올 수 있는 생활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주유소의 편의점 바람은 지난 91년 (주)유공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삼양석유가 편의점인 「AMPM」과 손잡고 문을 연 것이 처음. 당시만 해도 편의점이 일반화되지 않아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한화프라자가 동일석유와 손잡고 농협식품전문점을 개설하고 최근 LG칼텍스정유가 편의점을 갖춘 주유소 「LG스타」점을 개설하게 되자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지난달초 문을 연 서울 중구 초동의 LG스타 1호점은 윤활유 교환과 경정비는 물론 자동차 용품과 세제, 화장지와 같은 1천5백여가지의 편의품을 취급하는 30평 규모의 점포가 마련돼 원스톱쇼핑을 가능케 하고 있다. 점포옆에는 대형 편의점에서나 볼 수 있는 현금자동지급기는 물론이고 팩시밀리와 복사기와 같은 사무기기도 설치해 두고 있어 한 번 들르기만 하면 웬만한 일은 모두 볼 수가 있다. LG칼텍스정유는 편의점 주유소를 오는 2000년까지 전국에 2백50개 이상으로 늘리기로 하고 이를위해 영업부내에 12명의 지원팀을 구성해 놓고 있다. 한화에너지와 쌍룡정유와 현대정유도 편의점 사업 진출을 구상중이다. 한화에너지의 경우 농협식품 전문점에 이어 서울 목동주유소에 할인점을 개설, 할인점 주유소 사업에 나서고 있다. 한화는 앞으로 목좋은 주유소를 선정해 편의점을 개설, 전국단위로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중이다. 이를 위해 사내에 [주유소 경영컨설팅팀]을 구성하고 본격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 주유소에 아이스크림 코너와 특산물코너 등을 운영해온 현대정유와 쌍용정유도 계열 판매전담회사를 통해 편의점 사업 진출을 준비중이다. 주유소의 변화는 이 뿐만이 아니다. 고객감동을 위한 주유소의 변신은 「탁아방운영에서 골프연습장까지」 다양화되고 있다. 서울 도심에 위치한 (주)유공 계열의 일부 주유소는 한 켠에 조각공원을 설치, 고객과 인근 주민들의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현대정유의 서울 신사주유소의 경우 골프연습장을 겸하고 있다. 이 주유소 1층은 주유소와 골프용품전문점, 세차장, 경정비센터로, 2∼4층은 골프연습장을 갖추고 있다. 쌍용정유 계열 주유소는 수신자부담의 전용전화와 팩스를 설치, 서비스하고 있으며 자동차 보험업무의 처리와 상담까지 해주고 있다. 주유소는 사무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대형화되고 화려해지고 있는 것도 새로운 변화의 하나다. 정유업계는 휘발유에 상표를 도입한데 이어 대대적인 CI(이미지 동질화)작업을 통해 직선과 곡선을 조화시킨 조형미를 연출하고 있다. 또 주유소마다 현란한 네온사인과 각종 장식물을 달아놓기도 하고 일부 주유소는 치어걸들을 동원해 율동과 랩댄스을 선보이고 있다. 주유소의 이같은 변화바람은 내년을 기점으로 전개될 국내 정유시장의 대대적인 변화에 대응한 업계 자구책의 일환으로 풀이되고 있다. 석유사업법 개정안이 지난해말 정기국회를 통과함으로써 내년부터는 유가가 완전 자유화되고 오는 99년부터는 정제업 신규참여와 외국업체의 국내 진출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유가가 자유화되면 석유류제품가격은 국제가격에 근접해지고 해외 대형 석유업체의 국내 유통업 참여가 가능해진다. 국제가격에는 휘발유 등유 경유의 가격차가 거의 없기때문에 진입장벽이 없어지면서 국제가격보다 높은 휘발유 같은 유종은 가격이 내려가고 국내가격이 싼 경유등은 지금보다 올라가 유종간 가격차가 많이 줄어들게 된다. 또 모빌, 엑슨과 같은 앞선 노하우와 자금력으로 무장한 세계적 메이저들이 국내에 밀려오고 시장은 가격파괴 경쟁등으로 갈수록 혼란스러워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들이 국내의 대형석유 자영대리점이나 저장시설을 갖춘 대기업과 연계해 국내시장에 진출하면 국내 정유시장은 눈에 보이는 수입승용차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잠식될 전망이다. 여기에 국내 정유업계의 설비증설 경쟁은 공급자 중심의 휘발유 판매전을 소비자중심의 시장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올 한해만 해도 현대정유가 대산에 하루 20만배럴 규모의 정제시설을 준공하는 등 올 한해만 62만 배럴의 생산설비가 증설돼 올 연말이면 하루 2백44만배럴체제를 갖추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정부의 보호막 아래서 성장해온 국내 정유시장은 무한경쟁속으로 내몰리게 된다. 주유소의 편의점 바람은 이같은 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대응, 적극적인 서비스를 통해 고객감동을 이끄는 한편 부대사업을 통해 주유소의 이익을 보전함으로써 간접적인 경쟁력 향상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민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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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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