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난 92년 이런 사법부내의 「금과옥조」(金科玉條)가 깨지는, 그것도 최상급법원인 대법원에서 깨진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대법관들의 합의내용이 법정에서 선고도 되기 전에 언론에 보도돼 버린 것이다.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88년10월 포주 이금순(李金順·여·당시 53세)피고인은 인신매매범에 의해 윤락가에 팔린 황모(당시 18세)양을 다시 넘겨받아 윤락행위를 시킨 혐의로 1심에서 윤락행위방지법위반 및 부녀매매죄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李피고인은 유죄가 인정된 부녀매매죄부분에 대해 항소, 무죄판결을 받아 징역1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났다. 검찰은 李피고인의 무죄부분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며 대법원에 즉각 상고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대법관들은 18세 소녀를 인신매매범으로부터 넘겨받아 윤락행위를 시킨 李피고인을 부녀매매죄로 처벌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뜨거운 법적논쟁을 펼쳤다.
이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중이던 당시 인신매매행위는 범죄형태가 갈수록 집단화·조직화·흉포화해 커다란 사회문제가 돼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17~18세 의 소녀라면 부녀매매죄로 처벌을 해야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기존의 확립된 대법원 판례는 17~18세가 넘는 부녀자는 윤락의 목적으로 사고 팔았다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구조를 요청할 수있는 지적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부녀매매죄를 인정하지 않고있었다.
따라서 법조출입기자들도 이 사건이 사회분위기를 반영, 종전 대법원의 판례를 변경시킬수 있는 것으로 보고 큰 관심을 보였다.
게다가 이 사건은 통상 대법관 4명이 한개의 재판부를 구성, 사건을 처리하는 것과는 달리 대법관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에서 다루고있어 판례변경쪽에 무게중심이 실려있었다. 대법원은 사안이 중대하고 판례를 변경하거나 판례통일등을 할때는 일반적으로 대법관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사건을 다룬다.
이 사건도 당초 대법관 4명이 다루다가 의견이 엇갈려 전원합의체로 넘어간 케이스였다.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김덕주(金德柱)대법원장을 비롯, 이회창(李會昌)·최재호(崔在護)·박우동(朴禹東)·윤관(尹 )·이재성(李在性)·김상원(金祥源)·배만운(裵滿雲)·김주한(金宙漢)·윤영철(尹永哲)·김용준(金容俊)·김석수(金碩洙)·박만호(朴萬浩)대법관이 모두 참여했다. 안우만(安又萬)법원행정처장은 재판업무에 관여할 수없어 이사건에서 배제됐다. 대법관들은 사건해결을 위해 여러차례 합의를 했다.
그러던중 모언론사 K기자가 대법관들의 합의내용 취재에 성공, 「최근의 사회실정에 비추어 종전판례를 변경하는 문제를 놓고 대법관들 사이에 양론이 갈려 전원합의체 심리를 다시 열어 판례변경여부를 최종결정하기로 했으며 부여매매죄 인정쪽으로 굳어가고있다」고 보도했다.
기사가 나가자 대법원이 발칵 뒤집혔다. 선고도 하기전에 판결내용이 새나간 꼴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법관은「판결로서만 말한다」는 준칙이 최고법원에서 깨어진 형국이 되고만 것이다. 당시 한 법조인은『대법원이 아닌 일선 법원에서 이같은 보도가 나갔다고 상상하면 재판부로서는 정말 아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K기자의 기사는 대법원의 선고결과와 맞아떨어졌다. 대법원전원합의체는 92년1월21일 『지각이 있는 성년부녀자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의사에 반해 매매의 대상이 되었다면 인신매매범은 부녀매매죄로 처벌해야 한다』며 李피고인에 대해 원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부녀매매죄부분을 파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이사건의 재판장은 金대법원장이였지만 주심 대법관은 이재성(李在性)대법관이 맡았다.
이 판결로 기존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는 모두 변경되었다.
K기자는 최근 『어디서 들었는지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지금도 말해줄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취재원이 대법관은 아니었다』며 『기사가 나간 날 약혼식을 올렸는데 특종으로 자축한 셈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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