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강한 통화가 좋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때 미국에 살아본 사람은 통화가치 하락의 서글픔을 누구보다 잘 안다. 서울에서 보내주는 봉급이 반토막나서 생활이 쪼들린 것은 물론 잘나가던 한국기업들이 헐값에 외국에 팔려나가는 수모를 지켜보아야 했다. 나 자신은 물론 나라 전체가 가난해진 것이다. 당시 미국의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입만 벌리면 ‘강한 달러(strong dollar)’를 외쳤고 우리 원화도 강해질 필요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한국 사람들은 원화 환율이 올라도 걱정, 내려도 걱정한다. 그렇다면 미국 달러에 대해 고정환율제를 채택해야 걱정이 없어질 것인가. 원화강세, 빠른 경제회복 의미 해가 바뀌면서 원화 환율이 1달러당 1,000원선 이하로 급락하고 있다. 외환 딜러들의 얘기를 들으면 상당한 물량의 옵션이 걸려 있던 1달러당 980원의 저항선이 하향압력에 무너졌고 연말 환율 저점이 920원에 이를 것으로 시장의 컨센서스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우리 경제도 세자릿수의 환율 시대에 적응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제 강한 통화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원화강세는 외국인들이 올해 한국 경제가 빠른 속도로 회복할 것으로 믿고 한국에 투자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한국 경제가 그만큼 건실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쩌면 원화강세는 우리가 희망하던 경제회복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에 생겨난 현상이며 따라서 우리 스스로가 초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원화강세는 수입물가를 하락시켜 내수회복의 긍정적 조건을 형성한다. 또 원화가치 상승은 금리인상 요인을 상쇄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한국기업의 수출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원화절상 속도가 지나칠 정도로 빠르다는 점이다. 무역업계에서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시장에 개입해 완충해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섣불리 환율을 떠받치려다 시장의 반격을 받기 십상이고 적절치 못한 시장개입은 한국경제에 대한 부정적 시그널을 줄 수 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할 때 경제에 불균형이 발생하고 국제 투기꾼들은 이를 노려 역외시장을 우회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전통적인 수법이다. 세계 외환거래의 중심지인 영국도 92년 의도적으로 파운드시장에 개입하다가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가 10억달러로 공격하자 여지없이 무너진 바 있다. 따라서 정부와 한국은행의 성급한 개입보다는 자금의 해외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등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환율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길이다. 원화절상은 당장에 한국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국제시장에서 현대자동차의 싼타페와 미국의 경쟁차종 사이에 대당 1,000달러의 가격 경쟁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게 통상의 분석인데 환율이 5%만 하락해도 현대차는 미국차와 동등한 경쟁을 해야 한다. 이런 걱정도 수출 경쟁력을 단순히 가격 경쟁력만으로 보는 좁은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 회사를 비교해보자. 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10년 사이에 일본 엔화가 1달러당 270엔에서 280엔까지 올랐다. 그 당시에 일본 자동차 회사가 다 붕괴될 것처럼 보였지만 도요타 자동차는 어려울 때일수록 기술투자를 많이 해 오늘날 세계 제1의 자동차 회사로 부상했다. 국력 신장에 적극 활용해야 이에 비해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는 달러절하의 덕을 보며 시장을 다시 찾았지만 그때 모럴해저드에 빠졌다. GM은 환율변동으로 생긴 수익을 근로자 복지에 흥청망청 썼고 그 결과는 지금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진 경영위기다. 우리 기업들도 원화절상에 따른 가격 경쟁력 저하만 걱정할 게 아니다. 대규모 기술투자와 경비절감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이제 절상된 한국돈을 국력신장에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할 때다. 금융기관들이 해외영업을 강화하며 수익이 많이 나는 기업들은 해외의 저렴한 기업을 인수해 글로벌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아울러 국제원조를 늘려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통일에 대비해 달러를 축적하는 것도 원화 강세기에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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