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피플 인 이슈] 머빈 킹 영란銀 총재

글로벌 신용위기로 실추된 명예 회복할까<br>시장 不개입 원칙론 고수하다 노던록 사태 악화<br>"뒤늦은 대처로 금융시장 불신 키웠다" 비난 불구<br>"경기 살릴 적임자" 경제운용 능력 인정받아 연임




지난해 여름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사태의 여파로 대서양 건너 영국 금융시장이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심하게 곪아 터지자 머빈 킹(60) 영란은행 총재에 비난의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들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 지난해 여름, 자유주의자의 원칙론을 고수하며 중앙은행의 시장 개입을 거부하던 그는 금융시장에 긴급자금을 살포하고, 모기지은행 노던록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며 스스로의 주장을 접어야 했다. 그러던 그가 지난달 30일 5년 임기의 중앙은행 총재를 연임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는 체면을 유지하다가 뒤늦게 시장에 개입해 금융시장 불안을 악화시켰다고 비난받았으며, '오락가락 금융정책'으로 중앙은행에 대한 시장의 불신을 키웠다는 비아냥까지 감수해야 했다. 원칙론자로 알려진 그가 소신을 굽힌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영국 금융기관이 서브프라임 부실로 타격을 받을 때, 그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유럽중앙은행(ECB)과 달리 '투기꾼을 구제해 줄 수 없다'며 시장 불개입이라는 원칙을 지켰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영국 5위의 모기지 업체인 노던록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여파로 대규모 예금인출(뱅크런) 사태를 겪자 뒤늦게 무제한 예금지급보증 조치를 취하며 고집을 꺾었다. 그러자 킹이 신용위기 초반 너무 안이하게 대처해 위험을 자초했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비판론자들은 "킹이 일찍 행동에 나섰다면 노던록 사태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뒤늦은 자금지원으로 효과는 못 거두고, 시장의 신뢰만 잃게 됐다"고 맹비난했다. 킹도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신용경색의 해법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을 것"이라며 잘못을 시인했다. 하지만 영국 금융가 '더 씨티'는 킹의 재선임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예상치를 웃도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면서도 둔화 추세로 접어들고 있는 경기를 되살릴 적임자로 킹 총재만한 통화정책 전문가가 영국에는 없다는 것이다. 런던 경제기업연구센터(CEBR)의 리더인 더글러스 맥윌리엄스는 "그는 노던록 사건을 잘 처리하지 못했지만 경제를 잘 다뤘으며,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결국 그의 성적은 좋다"고 그의 능력에 신뢰를 보냈다. 킹은 캠브리지대를 졸업하고, 런던정경대(LSE)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에서 교수로서 경력을 쌓았다. 1991년 이코노미스트로 영란은행에 첫발을 내딛은 후 1997년 부총재로 승진했고, 지난 2003년 6월 에드워드 조지의 뒤를 이어 영란은행 총재를 맡았다.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아스톤 빌라의 팬으로서, 테니스와 클래식을 즐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02년 6월 영란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MPC)에서 유일하게 기준금리 인상을 찬성해 대표적인 매파로 꼽혔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킹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지원을 반대했다"며 "구제금융이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고, 더 큰 금융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라고 전한다. 아니나 다를까 킹은 글로벌 신용경색 문제가 불거졌을 때 철저히 방관자적 자세를 취했었다. 중앙은행이 나서면 '미래에 발생할 금융혼란의 씨앗'을 뿌리게 된다는 것. 지나친 '자유방임주의'라는 비판에도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한술 더 떠 킹은 FRB 의장직을 그만둔 후에도 미국 경제에 대해 말이 많은 앨런 그린스펀 전의장을 겨냥해 "나는 전임자인 조지 총재가 통화정책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나도 퇴임 후에는 그렇게 처신할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는 킹으로 하여금 원칙보다는 융통성을 중요함을 깨닫게 했다. 킹은 지난 연말 기준금리를 5.75%에서 5.5%로 내린데 이어 지난 7일에도 0.25%포인트 추가 인하했다. 신용 경색에 따른 국제금융시장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재임에 성공한 킹 총재는 글로벌 경기침체의 시기를 맞아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그는 지난 1997년 금리정책 결정권을 중앙은행이 넘겨 받은 이후 올해가 가장 힘든 한해가 될 것이라고 스스로 인정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