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금융시장이 이라크전 위기와 북핵 사태로 더 깊은 수렁속에 빠지고 있다.
미국의 대이라크 공격이 마지막 수순에 돌입하고 북한이 또 다시 동해에 지대함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된 10ㆍ11일 일본 닛케이 지수는 연속 이틀 장중 한때 8,000선이 맥없이 무너지며 20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들의 2차 결의안 승인이 불투명해지는 등 상황이 미국에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달러가치 역시 크게 하락,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116엔대에 진입했다.
특히 이라크의 전운 고조로 회기 결산일인 3월말까지 닛케이 지수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커 일본 금융권에 결정타를 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이미 최근 주가 하락과 부실채권 확대로 막대한 손실을 기록한 일본 은행들은 주가가 더 빠질 경우 국제결제은행(BIS)이 요구하는 BIS자기자본비율 8%를 맞추기도 어려워지는 사태가 속출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전문가들은 일본 은행들이 주가 하락으로 인한 미 실현 손실의 부담을 견뎌낼 수 있는 마지노선을 닛케이지수 7,500선으로 잡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도 불구, 연일 엔화 가치가 상승(달러 하락), 일본 수출 기업들의 부담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인식되고 있다. 엔화 가치 상승은 또 수입제품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일본의 고질병인 디플레이션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큰 문제다.
이에 따라 이날 일본정부와 중앙은행은 주식시장 안정화 대책을 마련하고 외환 시장 개입을 시사하는 등 불끄기에 서둘러 나섰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주식시장 안정화 대책 내용의 대부분이 유동성 공급 확대에 한정될 것으로 보이는데다 올들어 일본 정부가 이미 여러 차례 외환 시장에 개입했지만 별다른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
이와 관련,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일본 중앙은행(BOJ)이 금융 기관들 사이에서 자금 조달 우려가 고조되면서 금리가 급등하는 시점을 포착, 유동성을 확대 공급할 방침이라고 이날 보도했다. BOJ는 당분간은 단기 국채 매입과 같은 기존의 공개시장 조작정책으로 유동성을 공급할 것으로 보이며 주가가 계속 떨어질 경우 상장지수펀드(ETF) 등 여타 자산 매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BOJ는 또 엔 강세를 막기 위해 하루에 1조엔의 대규모 시장 개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오카와 마사주로 일본 재무장관은 이날 “일본은 급격한 환율변동을 막기 위해 엔화를 매도할 준비가 돼 있다”며 “일본은 투기적인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청 역시 은행 위기 방지를 위한 자본 재편시안 작성 시한을 당초 예정됐던 늦여름에서 5월로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청은 이와 함께 금융위기에 대비한 공적자금 투입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상황이다.
<윤혜경기자 ligh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