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6월 19일] 촛불 이후의 걱정

신기루를 보는 것 같다. 지난해 12월19일 48.4%의 득표율, 2위와 무려 530만표의 사상 유례없는 압도적 차이로 17대 대통령이 탄생했다. 박수와 찬사가 쏟아졌고 기대와 희망이 넘쳐났다. 국정수행을 잘 할 것이라는 여론은 득표율을 훨씬 뛰어넘어 70%를 넘나들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지금 지지율은 10%대까지 떨어졌다. 기대는 실망으로, 찬사는 퇴진을 요구하는 성난 함성과 주먹질로 바뀌었다.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의 일괄사의 표명 사태도 벌어졌다. 취임 후 겨우 석 달 반 남짓 만에 일어난 일이다. 어떻게 이토록 짧은 시간에 이처럼 형편없이 구겨질 수 있을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쇠고기에 되새김질 당한 국정능력 성급한 얘기인지 모르나 실패한 대통령을 또 보게 되고 다시 고통의 5년을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앞날이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미국산 쇠고기는 이명박 정부의 실력과 밑천을 잘근잘근 되새김질해 좋은 면, 잘한 일은 그대로 삼켜버리고 부정적 요소들은 고스란히 내뱉어놓았다. 함량미달의 인사와 도덕성, 부실한 국정운영 시스템과 정책혼선, 상황판단 및 문제해결 능력 부족, 권력암투 등등. 촛불은 정부의 리더십ㆍ권위ㆍ신뢰를 깡그리 태워 형체를 찾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 결과는 정책 동력의 상실이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이제 정부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그대로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경제를 살리고 국가경쟁력을 위해 꼭 해야 할 일도 눈치를 봐야 할 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규제혁파, 법인세ㆍ종합부동산세 등 세제개편, 공기업개혁, 교육혁신 등 시급한 과제는 과연 잘 추진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뚫는 것만큼이나 힘들지 않을까 싶다. 한미 FTA는 찬성의견이 반대보다 많았으나 지금은 역전됐다. 수도권규제완화는 환경보호와 지방의 반대 목소리에, 금산분리와 법인세인하는 재벌과 대기업 특혜시비에 가로막힐 수 있다. 종부세 완화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공격 받기 십상이다. 종부세 보완은 야당의 대선공약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먼저 손대기 어렵게 됐다. ‘강부자 내각’의 원죄를 안고 있는 탓이다. 핵심정책의 표류 가능성은 그저 짐작만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조짐은 벌써 가시화하고 있다. 노동계를 비롯해 여기저기서 촛불시위에 자신들의 밥숟가락을 올려놓고 있다. 정부 역시 공기업민영화, 원전비중 확대를 골자로 한 국가에너지기본계획 등 주요정책을 줄줄이 뒤로 미루고 있다. 표면적 이유는 민생을 위한 우선순위 조정이지만 진짜 이유는 쇠고기 촛불에 또 다른 반대 목소리가 얹혀져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정상적 국정수행이 어려워진 것이다. 문제는 주요정책의 때를 놓치면 경제가 더 망가진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고유가 등 대내외 여건 악화로 어려운 판에 기업활동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규제개혁마저 늦어진다면 경기는 더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경제난은 여론악화, 신뢰상실, 정책동력 약화, 경제난 심화의 악순환을 불러온다. 신뢰회복 위한 각고의 노력을 쇠고기로 켜진 촛불은 언젠가 수그러들 것이다. 시위동력의 약화 징후가 보이고 때마침 장마도 시작됐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너무나 크다. 해법은 정부의 신뢰 회복이다. 사람 몇 명 바꿔서 될 일이 아니다. 촛불 수가 줄었다고 얼렁뚱땅 넘어가려 해서도 안 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포퓰리즘적 정책을 쏟아내고 원칙을 허무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국민들도 이제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정부의 일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반대하면 혼란은 피할 수 없고 경제는 깊은 구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또 다시 5년을 고통스럽게 보내기는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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