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국제자본 다음 목적지는

최근 영국에서는 150년 만에 처음으로 은행 앞에 고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그 은행이 파산하기 전에 자신들의 소중한 예금을 꺼내려고 초조하게 기다리는 일이 생겼다. 이 모습을 TV에서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잠시 1920년대 말 국제 금융 공황의 속편을 감상하는 듯한 착각을 했을 것이다. 바로 직전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가까스로 파산을 면했던 독일의 IKB와 작센은행처럼 이 영국 은행도 지난 수년간 투자자금이 넘쳐흐르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낮은 이자로 단기자금을 빌려 수익률이 훨씬 높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부채권(CDOs)에 투자해 짭짤한 수익률을 올리는 등 제법 잘나갔던 금융기관이었다. 최근의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은 넘쳐나는 국제 투자자금과 중구난방으로 번창한 새 금융기법을 융합해 무모하게 이윤 탐사를 추구했던 국제 투자가들과 금융기관들의 합작품으로 보면 된다. 사실 지난 20여년간 국제 금융 자금의 액수는 가히 천문학적으로 증가했다. 20년 전 세계 외환시장의 거래 규모는 하루에 평균 2,600억달러였으나 지금은 그 열두 배인 3조2,000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세계 12대 경제 대국인 우리나라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4배에 해당하는 액수가 단 하루에 거래되고 있는 셈이다. 20년 전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던 금융파생상품시장도 이제 전세계 GDP의 10배가 넘는 500조달러 이상의 규모로 성장했다. 비록 지금의 국제 금융위기로 미국의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부채권 등 선진 투자상품에 투자했던 자금들이 미국 국채(TB) 등 안전한 자산으로 잠시 피신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이 자금들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꿈틀거리기 시작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시적인 금융위기 때문에 지금껏 넘쳐나던 국제 투자자금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한 1조5,000억달러를 굴리는 헤지펀드들, 2조달러가 넘는 아부다비ㆍ중국ㆍ싱가포르 등의 국부펀드, 전세계의 연금ㆍ보험회사ㆍ투자펀드ㆍ사모펀드 등등 지금 국제 금융시장에서 호시탐탐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는 투자자본의 규모는 가히 천문학적이라 하겠다. 그러면 작금의 국제 금융위기가 서서히 풀린 후 이 거대한 투자자본이 또 어디로 몰려갈 것인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채권에 혼이 난 경험 때문에 국제 투자가들은 미국 등 선진국들에서 만들어진 선진 금융상품에는 당분간 흥미를 두지 않을 것이다. 요즘 뉴욕의 월가와 런던, 홍콩의 국제 금융센터에서의 은밀히 회자되고 있는 화두는 단연 이머징마켓이다. 경쟁이 치열한 국제 펀드매니저들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높은 투자 수익률을 확보해야 하는데 미국의 서브프라임 채권처럼 선진국에서의 고수익 고위험 투자기법의 허점이 증명된 이상 이들이 생각할 수 있는 다음 목표는 선진국들보다는 위험도는 높지만 아직도 고수익의 기회가 많은 이머징마켓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앞으로 2~3년간 막대한 국제 투자자금들이 전세계 이머징마켓에 지금보다 더욱 과감하게 속속들이 파고 들어올 것이 예상된다. 그중에도 특히 한국시장은 이들 국제 투자가들이 빼놓을 수 없는 투자 대상국이다. 오는 12월 대선에서 친시장적인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당선 되면 온갖 국제 투자자금이 물밀듯 한국으로 몰려올 것이다. 이러한 국제 투자자본 중에는 우리 경제에 선(善)기능적인 장기성 투자도 있을 수 있겠으나 대부분 유행 따라 거쳐가는 철새형 해외 투자가 대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그중에는 한국의 알짜배기 기업까지도 인수합병(M&A)으로 덮치려는 악성 투기자본도 포함될 것이다. 이럴수록 정부 당국자들은 경각심을 한층 높여 지혜롭고 효과적인 예방책을 지금부터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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