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부장은 연말 재고금액과 몇가지 비용전표를 조작, 경영자의 뜻에 따라 대외발표용 당기순이익을 만든다. 전표 몇장으로 200억~300억원의 순이익을 줄였다 늘였다 하는 일은 아마 金부장이 입사하기전부터 시작된 일이리라. 이같은 일은 IMF체제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부실회계는 이와같이 회계정보가 생산되는 기업현장에서 시작된다. 한국의 기업자료는 정보생산단계부터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분식결산의 기법이 너무 다양하고 교묘해 외부감사인이 이를 100% 적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장 일반적이고 널리 알려진 분식결산 기법은 연말재고의 조작이다. 연말재고는 12월31일 현재 기업이 가지고 있는 총재고수량과 재고단가를 곱해 산출된다.
전국 곳곳에 분산돼 있는 사업장을 하루에 모두 실사할 수 없고, 실사한다 해도 창고 가득 널려있는 재고품의 수량과 가격을 정확히 계산해 내기란 더 더욱 어렵다. 연말재고가 부풀려지면 매출원가(기초재고+당기매입-연말재고)가 과소계상돼 순이익이 늘어난다.
몇년전 중견유통업체인 모기업은 이런 방식으로 2,000억대에 이르는 재고를 과대계상, 거액의 적자를 흑자로 반전시켰다. 이 회사는 결국 이듬해 부도가 나버렸고 이 회사의 재무제표를 믿고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한 사람은 엄청난 손해를 봐야 했다.
이와 같은 분식사례는 수없이 많다. 비용으로 처리해야 할 연구개발비를 자산에 포함시킨다든지 감가상각방법을 변경해 비용을 조정하는 등의 기법은 초보적인 수준.
팔지도 않은 거래처에 매출채권을 잡아놓고 해외법인에 돈을 빌려줬다며 계열사 대여금을 재무제표에 버젓이 올려놓는다.
이런 분식결산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기업과 기업인, 주주이다. 회계정보는 이용자에 대한 정보제공 기능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효율적 경영을 가능케 하는 가늠자 역할을 한다.
분식결산이 누적되면 어느 누구도 회사의 정확한 재정상태를 알지 못하게 된다. 엉뚱한 정보를 가진 경영자는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수 밖에 없다. 결국 부메랑처럼 회사를 무너뜨리고 만다.
2년전 부도난 모그룹의 경우 회장이 직접 비서실과 경리부, 전산실, 자금부 등 핵심요원에 점조직형태로 분식결산을 통한 비자금조성을 지시해 담당임원들도 정확한 회사의 자금·재무상태에 대해 몰랐다고 한다.
대우가 유동성위기에 몰려 워크아웃을 신청한 지난 7월말 김우중(金宇中)회장은 전경련회장단 모임에서 현금흐름에 신경쓰지 못한 게 화근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는 金회장도 대우의 재무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한국적 경영환경에서 경영자는 분식결산의 유혹을 강하게 느낄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순이익이 좋게 나와 주가가 올라야 자리를 보전할 수 있고 판공비로 메우기 힘든 부분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
하지만 이는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의 경영자도 그런 유혹을 받는다. 결국 기업현장에서 회계 투명성이 확보되려면 경영자의 높은 도덕성과 지배구조 개선, 투명한 사회분위기가 동시에 뒷받침돼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정부는 기업의 투명한 회계처리를 위해 감사위원회 설치, 지배구조 모범규준 제정 등 구조적인 개혁을 통해 회계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기업현장에서 회계투명성이 나아지고 있다며 긍정적 반응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시장경제시대에 정확한 정보에 대한 기업의 내부필요성이 정직한 회계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섞인 전망도 대두된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아직 멀었다는 지적이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연결돼 있어 다루기가 쉽지 않다』며 『기업이 투명한 척 시늉만 하다 옛날로 되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라는게 최근 감사를 실시한 회계사의 말이다.
회계법인 고위관계자는 『회계법인의 성실한 감사도 중요하지만 기업에 대한 사회적 감시기능이 활성화돼야 분식결산이 사라진다』며 『소액주주, 기관투자가 등 주주와 은행등 채권자는 물론 회사노조나 소비자단체 국세청 등 기업이해관계자들이 재무정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장규기자(美공인회계사)JK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