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선진국이 신자유주의 선도자?

■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 지음, 부키 펴냄<br>강력한 보호무역으로 富 쌓았다!<br>'美등 자유무역·세계화로 번영 구축' 논리에 반론<br>"개도국 보조금 정책등 보호책 적극 펼쳐야" 주장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5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영국의 NGO 옥스팜 회원들이 서방선진 8개국 대표들을 형상화한 인형을 뒤집어 쓰고 각국 대표들을 풍자하고 있다.

'삼성과 노키아가 신자유주의를 신봉했더라면 삼성은 여전히 사탕수수나 정재하고 노키아는 나무나 베고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선도 기업들을 향한 혹평으로 들릴 지 모르지만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의 신간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따르면 그렇다. '쾌도난마 한국경제', '사다리 걷어차기'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저자가 중ㆍ고등학생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경제교양서를 들고 고국을 찾았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것은 불과 30여년 전 일. 삼성은 제일모직의 직물과 제일제당의 설탕 사업에서 번 돈으로 10년이 넘도록 전자 사업에 투자했다. 만일 삼성이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비교우위가 높은 제당사업만 고집했더라면 결과가 어떠했겠냐고 저자는 되묻는다.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찬양하는 이들은 능력을 기르는데 투자하는 것보다 단기적인 이익에 집중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들은 시장을 개방하고 자유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는 논리를 펼친다. 신자유주의라는 마술 지팡이를 휘두른 결과 번영을 이뤘다는 것. 하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1930년대 스페인을 제외하면 오늘날 부자 나라 가운데 미국이나 영국만큼 강력하게 보호무역 정책을 실시했던 나라는 결코 없었다. 보호 무역의 본가처럼 알려진 프랑스ㆍ독일ㆍ일본 세 나라도 미국과 영국보다 관세가 훨씬 낮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유 무역의 옹호국인 미국과 영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산업 강국이 되기 전까지는 자유무역 경제를 채택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부자 나라들 가운데서도 가장 심하게 보호무역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안정된 위치를 차지한 나라들은 과거 자신들이 사용했던 보조금과 높은 관세 등 민족주의적 정책들을 통해 경쟁국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자유무역과 시장보호주의는 서로 오랫동안 맞서왔다. 사례를 들어보자. 영국은 19세기 초반 중국과의 무역에서 막대한 적자를 냈다. 영국은 이를 메우려고 중국에 아편을 수출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아편전쟁이 벌어졌다. 아편전쟁은 한마디로 자유무역의 선도자가 자국의 마약 불법 거래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에 전쟁을 선포한 경우다. 이후 서구 열강은 식민주의와 불평등 조약으로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자유로운 무역을 전세계 확산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식민주의와 불평등 조약에 묶여 있던 나라들이 올린 경제 성과는 형편 없었다. 1870년에서 1913년 사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연간 0.4% 증가한 반면, 아프리카의 1인당 국민소득은 0.6% 증가했다. 이 기간 서부 유럽의 1인당 국민소득은 1.3%, 미국은 1.8% 늘었다. 이쯤 되면 자유무역이 모두에게 득이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기 시작한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나. 시대가 바뀐 만큼 총, 칼 대신 좀더 세련된 방식이 이용된다. 미국과 영국 등 부자 나라들은 국제통화기금(IMF)ㆍ세계은행ㆍ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신자유주의ㆍ자유시장ㆍ세계화를 확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선진국들은 IMF의 금융원조에 따른 조건으로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장 교수는 현재와 같은 신자유주의가 계속된다면 언젠가 디스토피아가 찾아온다고 우려한다. 대안은 없는 걸까. 그는 게임의 룰을 공정하게 만들 것을 주문한다. 현재의 자유무역은 브라질 축구 대표선수가 10대 소녀들과 경기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저자는 장기적으로 볼 때 보조금 정책, 관세 적용과 같은 보호책을 통해 개발도상국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나쁜 사마리아인'은 작가가 성경에서 인용한 것으로 신자유주의자, 부자나라와 동의어로 쓰였다. 독자들에게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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