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발자취] 2000년 '40대 기수론' 당쇄신 앞장

우리당 초대의장…당 지지율 30%로

방송기자로 언론계에 진출해 정치ㆍ외교 분야를 주로 출입했고 로스앤젤레스(LA) 특파원을 지냈으며 간판 뉴스프로그램의 앵커로 활약한 언론인 출신이다. 대학 친구였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권유로 지난 96년 초 정계에 입문, 40개월간 국민회의ㆍ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을 맡으며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또 2000년 ‘40대 기수론’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에 당선된 뒤 당정 쇄신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정치인으로서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다. 제16대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국민참여경선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경선 마지막까지 선의의 경쟁을 펼친 ‘아름다운 동행자’의 이미지로 뇌리에 남았다. 노 대통령 당선 후 천정배신기남 의원 등과 열린우리당 창당작업을 주도했다. 2004년 1월 임시전당대회에서 초대 당 의장에 선출됐다. 창당 후 10%대에 머물던 당 지지율을 ‘몽골기병론’이란 특유의 돌파력으로 30%까지 끌어올리며 2004년 4ㆍ15총선에서 과반 이상인 152석을 획득, 당을 명실상부한 집권여당의 반열로 올려놓았다. 물론 이 과정에 ‘대통령 탄핵’이란 헌정 초유의 사태가 빚어져 ‘반사이익’ 이 더해진 측면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특히 4ㆍ15총선 승리 공로에 힘입어 통일부 장관에 발탁돼 행정경험을 쌓았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멍에’라고 밝힌 바 있는 ‘노인 폄훼 발언’ 파문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 2인자로서 집권 후반기 국정안정과 대권쟁취를 향한 역할이 주목된다. ◇약력 ▦53년 전북 순창 출생 ▦전주고,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MBC 앵커 ▦15, 16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초대 의장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제31대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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