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구내에서 여러나라 사람들이 만난 적이 있었다. 일행인 한국사람 한명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안내자인 미국인은 늦게 도착한 사람이 바로 옆에 다가올 때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이 그 안내자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우측통행으로 올줄 알고 그쪽 길만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라는 게 그의 답변.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모두 느끼는 일이지만 환승역에서 걸어가려면 거의 곡예보행을 해야만 한다. 좌측통행을 하다가 맞은편 인파와 정면충돌(?)이 될까봐 다시 우측으로 그리고 다시 대각선으로 건너가 좌측으로. 사실 매우 짜증나는 일이다. 매일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꼬불꼬불 걸어야 하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에너지의 소모가 얼마나 클까. 화살표시를 전혀 해 주지 않는 지하철공사측의 무신경은 차치하고.
우리나라엔 통행의 원칙이 없기 때문에 수많은 지하철승객들과 보행자들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초등학교에선 「차량은 우측통행 사람은 좌측통행」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차량은 우측통행이라는 원칙도 사실 지켜지지 않는다. 차량과 서울지하철(1호선 제외)은 우측통행이고 철도는 좌측통행이다. 어찌보면 자동차는 미국식, 철도는 일본식(원래는 영국식)이다. 게다가 차량과 사람이 모두 우측통행을 하는 미국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차량은 우측통행 사람은 좌측통행」이라는 원칙은 다소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통행의 방향에 관한 한 한국사회는 대혼란인 셈이다. 서울지하철만 하더라도 역마다 에스컬레이터의 통행방향이 제멋대로다. 역장의 전결사항일까.
사소한 문제 같아 보이지만 원칙이 없이 그때그때 통행원칙을 정한 결과 국가적인 낭비도 적지 않다. 수백만명의 시민들이 아침부터 머리를 어지렵혀야하는 문제는 둘째로 치자. 1호선이 좌측통행으로 된 것은 철도구간과 연결해야 했던 사정이 있어 시행초기에 불가피했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무원칙은 지하철 4호선에서 극에 달한다. 서울지하철은 우측통행이지만 철도청은 좌측통행을 마치 대단한(?) 전통으로 고집한 결과 4호선은 남태령까지의 서울구간은 우측통행이고 남태령부터 안산까지는 좌측통행을 하는 기이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덕택에 남태령구간에서 4호선은 대각선으로 교차하게 돼 있어 터널을 2개 뚫어야 했던 건 당연한 결과. 그 예산의 낭비됨이 무릇 기하(幾何)이뇨. 토목공학의 발전에는 다소 기여했는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철도청은 교류방식, 서울지하철은 직류방식이라 남태령은 사(死)구간이 된다. 4호선이 초기에 운행사고가 자주 난 것도 이 때문. 감사원이 이런 예산낭비와 비효율을 지적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정부는 제2건국운동에 상당히 적극적인 모습이다. 정부투자기관들은 이와 관련된 이벤트를 만드느라 고심하는 걸로 알고 있다. 제2건국운동도 결국 IMF체제를 초래한 후진적 병폐를 극복하고 선진사회로 가자는 게 근본정신일 것이다. 선진사회와 후진국의 가장 큰 차이는 질서가 아닐까. 통행원칙을 제2건국의 차원에서 추진해보길 기대해 본다. 일단 지하철승객들이 보행이나마 편하게 할 수 있도록. /SBCHOI@SED.CO.KR
崔性範 정경부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