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불붙은 자원전쟁] <2부-9> 사할린, 극동유배지에서 자원보고로

제2부: 프런티어를 가다<br>"검은 노다지 찾아…" 글로벌 에너지기업 집결<br>9개 유전프로젝트중 2개만 가시화 "잠재력 무궁무진"<br>외국인력·자본 몰려들며 부동산 임대료등 살인적 폭등 <br>자원 국유화·외자 견제 노골화… 투자메리트 감소 우려


인천공항에서 사할린의 주도 유즈노사할린스크로 향하는 비행기는 늘 만원이다. 아시아나항공과 사할린항공이 주7회 운항하고 있지만 빈자리를 찾기는 어렵다. 올 여름부터 운항횟수가 주9회로 늘어난다. ‘사할린에 누가 그렇게 많이 갈까’ 의아한 생각도 들지만 인천을 경유해 사할린에 들어가는 다국적 에너지 및 건설업계 인력 때문에 일찍 예약을 하지 않으면 좌석 표를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사할린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다 보니 서구식으로 모양을 낸 다국적기업 직원들의 사택과 보기 드물게 10층이 넘는 고층건물 건설 현장이 눈에 띈다. 돈줄은 당연히 미국이나 네덜란드ㆍ중국 등 외국계 기업. 건물을 짓고 도로를 깔아주겠다는 외국계 자본은 얼마든지 있다. 일년의 절반가량은 얼어붙는 ‘버려진 동토’가 지하 깊숙이 묻힌 기름밭을 찾아 외국인이 몰려드는 ‘황금의 땅’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자원개발 중심지로 ‘우뚝’=지난 5월 말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자동차로 40분가량 황량한 벌판을 달려 도착한 프리고노드노예 해안가의 LNG플랜트 공장 굴뚝에서는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오는 8월 말 완공을 앞두고 막바지 공정 마무리에 여념이 없는 이곳은 대우건설이 세계 최대 규모로 건설한 LNG 생산공장이다. 내년이면 사할린섬 북쪽으로 800㎞나 떨어진 사할린-2 프로젝트의 필툰과 룬스코예 가스전에서 채취한 천연가스가 파이프라인을 타고 이 공장에 모인 후 액화 과정을 거쳐 한국과 일본을 향하게 된다.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된 동포들이 하염없이 귀국선을 기다리던 ‘망향의 바닷가’는 우리나라로 천연가스를 실어 나르는 자원수송의 관문으로 거듭나게 된다. 한국가스공사에 따르면 동시베리아 및 극동의 천연가스 예상 매장량은 약 492억톤. 지난해까지 러시아에서 확인된 총 매장량(348억톤)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개발ㆍ생산 단계에 돌입한 사할린 1ㆍ2광구의 원유 매장량은 총 32억배럴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할린 주정부 천연자원국 자원동력부의 수다코바 옐레나 빅토로브나 해외투자촉진과장은 “사할린은 러시아 연방정부가 추진하는 자원개발의 중심지”라며 “사할린 9개 프로젝트 중 가시화된 것은 두개뿐으로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고 강조했다. ◇몰려드는 외국자본…치솟는 물가=외국인과 자본이 몰려들면서 사할린의 물가도 껑충 뛰고 있다. ‘묵을 만하다’는 3성급 호텔 요금이 하루 20만원선. 그나마 1~2주 전에 예약해두지 않으면 방을 구하기도 어렵다. 각국에서 몰려드는 정유회사ㆍ건설회사 등 다국적 기업들이 호텔을 블록 단위로 잡아버리기 때문에 만성적인 공급부족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호텔 인터넷을 이용하려고 안내 데스크에 문의해보니 4월 말 현재 객실 요금표에서 종일 300루블(약 1만3,000원)이라던 사용료는 어느새 2시간당 300루블로 올라 있었다. 자원개발 인력 유입이 급증하면서 부동산 임대료는 살인적으로 치솟았다.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외국인들이 임차하는 어지간한 25~30평형 아파트의 임대료는 달러화 기준으로 월 5,000~5,500달러, 원화로는 월 500만원을 훌쩍 넘는 수준이다. 남승철 한국석유공사 부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서울보다도 생활물가가 20~30%는 비싼 것 같다”며 “앞으로 프로젝트가 더욱 진척되고 외국계 인력이 더 몰리면 물가 때문에 살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 국유화’ 외국기업 견제 노골화=극동 개발 열기가 달아오르자 러시아 정부의 외국계 기업 견제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현재 석유공사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할린스카야 거리의 현대식 사무실은 원래 사할린 북쪽 4ㆍ5광구(4억배럴 매장) 지분을 보유한 BP가 사용하던 곳이었다. 막대한 개발비와 생산비, 그리고 턱없이 비싼 세금을 감당하기에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사무공간과 자재 절반가량을 석유공사에 판 것이다. 나머지 절반도 이달 안에 석유공사로 매각될 예정이다. 사할린 개발에 열을 올렸던 BP의 ‘완전 철수’ 가능성이 거론될 지경에 이른 것은 최근 러시아 정부의 자원 국유화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날로 영향력이 커지는 다국적 오일메이저에 위협을 느낀 러시아 정부는 주요 유전의 외국인 지분을 51% 미만으로 통제하고 세금을 대폭 올리는 등 노골적인 외국계 견제와 국영기업 밀어주기에 나서고 있다. 외국인의 투자 메리트는 자연 약화될 수밖에 없다. 실제 BP는 러시아 정부 측에 현재 배럴당 54달러 수준에 달하는 석유수출세 감면 없이는 철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사할린 주정부 천연자원국 자원동력부의 키혼키흐 베라 니콜라예브나 에너지개발과장은 “러시아는 정상적인 입찰을 통해 투자대상을 선정하고 경제활동 여건을 만들고 있다”며 “수년 동안 투자조건 등이 변경된 부분을 외국기업들이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반론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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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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