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21일] 커피하우스

1689년 2월21일자, 런던 가제트. ‘시계 5개를 훔쳐간 도둑을 로이드 커피하우스에 신고하면 사례하겠다’는 광고가 실렸다. 훗날 세계적인 보험회사로 발전하는 로이드 커피하우스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에드워드 로이드가 낸 이 광고는 신문 사상 최초의 별지인쇄라고도 전해진다. 에드워드가 템스강 부근에 커피점을 연 것은 1687년. 입장료로 양초 한 자루 가격인 1페니를 받던 커피하우스가 유행으로 번지던 시절이다. 신분의 고하, 재산의 유무를 떠나 자유로운 토론이 벌어지는 커피하우스를 ‘페니 대학’으로 부르던 당시 선원과 화주, 상인, 모험가들로 북적거린 그의 가게는 정보의 집산지로 떠올랐다. 에드워드는 1691년 가게를 런던 중심가로 옮기고 ‘칠판 서비스’도 선보였다. 가게의 칠판에 적히는 화물선의 출발과 도착 예정일 등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에드워드는 1696년 아예 정보지 ‘로이드 뉴스’를 발행한다. 단 한 장에 1페니인 정보지에는 외국 사정과 전쟁 소식, 재판, 의회 사정, 항해 정보가 실렸다. 1713년 에드워드의 사망(65세 추정) 이후 가게를 물려받은 사위들은 1734년 ‘로이드 리스트’를 창간, 항해와 해상보험 소식만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번창 가도를 달리며 런던 금융가의 핵심으로 부상한 커피하우스는 1760년 선박등기 업무로 손을 뻗었다. 세계 상선의 4분의1이 등록돼 있다는 로이드 선박등기소의 시발점이다. 로이드의 가게를 터전 삼아 일하던 보험업자 79명은 1771년 100파운드씩 출자해 로이드클럽을 만들었다. 손해보험사의 대명사인 로이드보험이 이렇게 생겨났다. ‘100만명이 종사하는 오늘날 영국 금융 서비스 산업은 커피하우스에서 비롯됐다.’ 모리스 워릭 주한 영국대사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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