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문화재, 화재로부터 보호하자

지난 2005년 4월5일 발생한 산불로 소실된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의 주 법당인 원통보전이 2년7개월 만에 복원됐으며, 보물 제479호인 동종도 종각에 안치하고 타종 행사를 가졌다. 낙산사는 내년 말까지 대부분의 전각복원과 산림조경을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문화재 화재방호시스템들은 시설 자체의 중요도보다 이들을 효과적으로 설계하고 관리하는 소방 엔지니어링인 화재안전관리 프로그램이 더욱 중요하다. 최근 필자는 문화재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93억원의 예산을 국고에서 지출하기로 한 낙산사 화재손실 문화재 복구대책반에 화재전문가가 한 사람도 없다는 놀랍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문화재 화재안전관리 책임기관인 문화재청 차원의 문화재 화재안전관리 프로그램이 없거나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로 볼 수 있다. 문화재가 산불로 소실됐다면 유사한 사고의 재발방지차원에서라도 화재방호전문가의 참여에 의한 적극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 즉 산불이 발생하기 쉬운 기상조건, 수목의 종류별 발열량, 산지의 형태 등에 대한 기초자료 조사와 연구를 통해 산불의 발생 가능성과 확산경로 등을 예측하고 이에 따른 표준대응 매뉴얼을 작성하는 등의 대비책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재방호전문가의 참여 없이 수립된 문화재청 차원의 낙산사 화재손실 문화재 복구대책에서는 산불로 인한 피해방지대책을 찾을 수가 없다. 문화재청은 낙산사 화재사건 이후 화재방호와 관련해 단 한 건의 연구용역을 수행했다. 연구용역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려면 용역결과에 대한 검증절차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연구용역 결과를 공청회 등을 통해 확증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정책에 반영했다. 적어도 문화재를 화재로부터 보호하려는 매뉴얼을 만들려면 화재위험성 발견, 화재방호시스템 설계, 화재방호시스템 유지·보수, 화재안전관리, 비상대응 등으로 구분해 각 분야의 전문가를 통해 작성했어야 한다. 문제는 문화재청이 확증 과정이 생략된 연구용역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해인사ㆍ봉정사ㆍ무위사ㆍ낙산사 등 4개 사찰 재난방재시스템 구축사업을 시범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중요 목조문화재를 방재상의 특성으로 분류하고 이에 따른 방재시스템 설계 및 설치기준 등을 분명하게 소개하지 못하고 있는 미확증 보고서 내용을 근거로 추진되고 있는 재난방재 시스템 구축사업은 그 내용과 수준은 물론이고 결과까지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문화재의 화재안전관리상 가장 큰 문제점은 문화재청에 방화(소방)전문기술자(Fire Protection Engineer)가 없다는 사실이다. 문화재청은 화재위험 관리업무를 화재전문가가 아닌 전기ㆍ기계 분야 전공자로 하여금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화재는 어느 경우에나 연소할 수 있는 조건만 갖춰지면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문화재에 대한 화재안전관리도 엄격하게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문화재청의 화재방호 조직을 강화하고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가동해 문화재 화재방호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문화재 화재방호 업무가 일정 수준에 오르기까지는 국내외적으로 기술력이 검증된 외부 전문가의 자문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할 것이다. 문화재 화재방호를 위해 어떠한 대책이 나오든 간에 낙산사 화재사고 이후 3년여 동안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 왔는가에 대해 전문성과 독립성이 확보된 제3자에 의한 철저한 현장 확인과 점검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화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문화재관리 인력에 대한 교육 실시, 출입통제 및 경비, 문화재별 특성과 조건을 고려한 성능위주 화재방호 설계, 화재방호 시스템의 유지ㆍ보수 프로그램, 화재안전관리 프로그램의 작성과 수행, 비상대응계획의 수립, 훈련ㆍ교육 사항 등을 포함하는 ‘문화재화재종합안전대책’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문화재 화재안전관리와 관련해 문화재청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위험한 부분은 검증과정이 생략된 허술한 화재방호 프로그램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최상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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