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한국의 新人脈] 대우證 '리서치 사관학교' 명성

■ 증권사 리서치센터 인맥<br>핵심인력 곳곳에 대거 포진… 대신·LG투자證 출신도 약진

애널리스트들이 모여 있는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조직문화는 ▦성과주의 ▦연봉계약 ▦잦은 회사이동으로 요약된다. 프로야구ㆍ프로축구 등 프로스포츠의 문화와 비슷하다. 이 때문에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학연ㆍ지연 등 '인맥(人脈)의 힘'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금융투자업계 내에서도 가장 냉정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증권사 리서치센터에도 '인맥'은 있다. 고시기수ㆍ지연ㆍ학연으로 끈끈하게 이어진 정(政)ㆍ관(官)계 인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리서치센터에는 '출신 증권사'라는 인맥이 흐르고 있다. 그 정점에는 대우증권이 있다. ◇'리서치 사관학교' 대우증권=지금에야 대다수 증권사들이 리서치센터를 두고 있지만 불과 지난 1990년대만 해도 리서치센터라는 명칭은 여의도에서 찾을 수 없었다. 대우증권의 리서치 조직도 마찬가지였다. 대우경제연구소ㆍ대우투자자문ㆍ대우증권에 리서치 업무를 하는 조직이 각각 있었다. 3개로 나뉘어 있던 대우증권 리서치 인력이 대우증권 산하의 리서치센터로 통합된 것은 1999년이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에게 국내 자본시장이 개방되고 펀드투자 문화가 태동하면서 리서치 조직의 체계화가 필요했고 리서치 인력들의 업무중복을 조율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통합 전 '범 대우증권 리서치 조직'에서 일했던 주요 인사로는 송종 전 교보증권 사장, 류근성 애플투자증권 사장, 허의도 전 푸르덴셜투자증권 부사장, 서동표 메트로아시아캐피털 대표, 이병익 오크우드투자자문 대표, 김일훈 스카이투자자문 대표, 백운 한가람투자자문 CFO 등이 있다. 또한 1999년 통합 당시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에 몸담았던 주요 인사로는 홍성국 대우증권 홀세일사업부 전무, 전병서 전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 신성호 우리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종승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임진균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윤재현 파레토투자자문 대표가 유명하다. 다른 증권사들도 뒤이어 리서치센터 통합에 나서고 대우그룹이 1999년 7월 대우사태를 겪으면서 대우증권 리서치 인력들은 급속도로 각계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흩어지게 된다.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리서치 사관학교'가 된 셈이다. ◇대신증권 인맥도 곳곳에 퍼져 있어=대신증권 리서치의 전신은 1984년 10월 설립된 대신경제연구소다. 대신경제연구소는 리서치 인력이 대우증권에 흡수된 대우경제연구소와 달리 2005년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대신경제연구소 리서치 출신 주요 인사로는 백관종 NH투자증권 법인영업 상무(공채12기), 김영익 전 하나대투증권 부사장(공채 17기),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공채 17기), 구희진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공채 19기) 등이 있고 이동섭 SK증권 리서치센터장도 2002년 대신경제연구소에 입사하며 리서치 업무를 시작했다. 구희진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도 대신경제연구소 출신 OB들은 종종 만나 식사를 같이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2000년부터 꽃 피운 LG투자증권=LG증권 인맥도 화려하다. LG증권 인맥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2000년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이 리서치 조직을 총괄하면서부터. 김 원장이 연봉제 도입, 인원확충 등을 통해 리서치 조직 체계화에 나섰다. 이후 박윤수 전 대우증권 전무가 2002년부터 리서치센터장을 맡아 황금기를 이끌었다. 당시 LG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는 박병문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센터장, 박종현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안수웅 LIG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준재 전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조병문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등이 몸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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