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데스크 칼럼]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정문재 금융부장 timothy@sed.co.kr 상앙은 진(秦)나라가 중국 전역을 통일할 수 있도록 기여한 일등공신이지만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는 법가(法家)를 대표하는 인물로 가혹할 정도로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했다. ‘인(仁)’을 최고의 이념으로 삼는 유가(儒家)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당연했다. 후세의 사가인 사마천도 “상앙의 천성이 각박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진나라 효공(孝公)이 상앙을 등용한 지 10년도 되지 않아 진나라는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나라로 떠올랐다.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부국강병 정책의 결과였다. 상앙의 법치주의는 태자라고 해서 비껴갈 수 없었다. 효공에 이어 진나라를 다스릴 태자도 사형을 당할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사형 판결을 받은 귀족을 숨겨줬다가 발각됐기 때문이다. 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태자는 사형을 피할 수 없었다. 태자를 죽일 수는 없었기에 측근들이 봉변을 당해야 했다. 태자의 시종장은 코를 잘라내는 형벌에 처해졌고 태자의 스승은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치욕을 감내해야 했다. 상앙은 법치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백성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법을 시행하기 앞서 쇼(?)를 연출했다. 수도 함양의 남문에 큰 나무를 갖다 놓은 후 이것을 북문으로 옮기면 금 10돈을 상금으로 준다고 발표했다. 백성들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여기자 상금을 금 50돈으로 올렸다. 마침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이 나오자 숱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에게 금 50돈을 상금으로 내줬다. 상앙은 신뢰가 바로 정책의 성공 여부를 가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법을 시행하기 앞서 ‘법을 지키면 포상을, 법을 어기면 벌을 받는다’고 여기도록 만들었다. 상앙의 노하우는 시공을 초월해 유효성을 발휘한다. 국민이 믿으면 그 정부는 성공을 거두지만 그렇지 못하면 실패로 끝나고 만다. 오는 25일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기도 전에 ‘일하는 정부’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휴일도 반납한 채 일할 정도로 의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정책의 실현 가능성 등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채 그저 과감하게 밀어붙이려는 사례도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이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영어 구사 능력이 필수”라는 데는 상당수 국민들도 공감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몰입교육이나 영어 숭배를 연상하게 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반감이 크다. 더욱이 영어 공교육 강화에 필요한 물적ㆍ인적 토대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영어 지상주의’에 몰입하면 사교육은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삼성그룹이 앞으로 신입사원 선발 과정에서 영어실력을 평가할 때 ‘말하기’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알려지자 강남 학원가에서는 “역시 영어권 국가에서의 연수가 최고”라는 말이 퍼져나가고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숭례문 복원을 위한 국민성금 모금 발언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강제적인 모금을 통해 국민에게 부담을 주려는 게 아니다”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스타일을 구긴 뒤였다. 아직은 새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기 전이라 부정적인 여론보다는 긍정적인 기대가 더 크다. 하지만 새 정부가 출범하면 달라진다. 사소한 실수라도 지금은 ‘의욕 과잉’정도로 눈감아줄 수 있지만 정부가 출범하면 ‘아마추어’ ‘무능’ 등과 같은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진다. 그게 과거의 경험이다. 천리 길을 가는 나그네는 십리 길을 서두르지 않는다. 지나친 의욕은 잇단 실수를 가져오고 이는 결국 신뢰의 상실로 이어진다. 정치(精緻)한 정책을 통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의 표현처럼 ‘참을 수 없는 경박함’과 같은 수사가 5년 내내 따라다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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