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8일 경북도지부장 이취임식에 참석해 한 말이다. 4선 의원에 서울시장, 장관까지 지낸 최 대표가 한 말이라고는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너무` 솔직했기 때문이다.
정치판은 이해관계가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글`이다. 정글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우회화법 또는 은유적인 화법을 많이 쓴다.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됐을 때를 대비한 `보험`이다.
최 대표는 원내 제1당을 책임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의장을 제외한 272석 중 149석을 점유한 거대 야당이다. 국회는 다수결 원칙이 지배한다. 때문에 `이론상`이기는 하지만 최 대표와 한나라당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대부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최 대표의 말에는 엄청난 `힘`이 실린다.
이런 최 대표가 보험도 안들고 고성능 자동차를 운전하다 실언을 했다는 지적이 일고있다. 한나라당 박 진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경제를 살려야 하는 대통령의 직분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데 대해 입장을 밝힌 의미로 이해해 달라”고 변명했지만 군색하다. 최 대표로서는 당장 보험을 들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를지 모른다.
최 대표는 취임당시 여야 영수회담을 요구했으나 이번 발언으로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 또 통상 대통령의 해외 순방 후 이뤄지던 여야 대표 초청 설명회도 열릴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민주당 문석호 대변인도 “야당 대표가 외교활동중인 대통령을 흠집 내고 국론분열적인 발언으로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있는 데 대해 실망과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새로운 야당 대표의 취임으로 우리 정치문화에 변화를 기대했던 국민들도 실망이 적지않다. 회사원 한성훈(33)씨는 “사실 노 대통령 취임 후에 실망도 많이 하고 그만큼 비난도 많이 했다”면서 “그러나 노 대통령과 대화를 해야 할 야당 대표가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는 말을 들으니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줄곧 `통 큰 정치`를 얘기해 왔다. 이번에야 말로 통 크게 자신의 실수를 수습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임동석 기자(정치부) freud@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