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슘페터의 복수

지난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투자자들은 닷컴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희망이라고 믿었다. 투자자들은 열광했고 주가는 급등했다. 기업마다 앞 다퉈 회사의 이름 끝자리에 ‘테크(tec)’나 ‘닷컴(.com)’이라는 단어를 붙여 어떤 식으로든 인터넷기업의 냄새가 나게 했다. 그래야만 투자자들도 몰렸다. 황금의 땅이라고 믿었던 닷컴‘엘도라도’가 한순간에 ‘킬링필드’로 바뀔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테마주 난무 닷컴열풍때와 흡사 물론 이런 헛된 망상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닷컴으로 대변되는 신경제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으로 예상했다. 신경제가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면서 생산성은 높여 구경제가 안고 있는 난제를 풀어줄 것으로 낙관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로 미국에 건너가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조지프 슘페터가 신경제의 우상으로 떠오른 것도 이때다. 신경제 학자들은 “신기술은 창조와 파괴를 반복하며 구기술의 가치를 잠식한다”고 강조한 슘페터의 이론을 단순히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했다. 신경제의 현 기술이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서 곧 구기술로 전락한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파괴는 오로지 굴뚝주의 구경제에만 국한된 것으로 과대 포장했다. 하지만 파괴는 구경제보다 신경제에서 더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닷컴주들이 줄줄이 무너져내렸다. 닷컴 버블의 이 같은 붕괴에 대해 폴 크루그먼 스탠퍼드대 교수는 슘페터 이론의 잘못된 해석에 대한 응징이라며 ‘슘페터의 복수’라고 칭했다. 그 복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코스닥시장이 여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떼거리 테마가 계속 판을 친다. 황우석 신화가 우리를 열광하게 할 때에는 바이오 테마가 시장을 뒤덮더니 최근에는 엔터테인먼트 테마를 필두로 대체에너지, 로봇산업 등 대기업들도 진출하기 쉽지 않은 거창한 테마들이 시장에 난무한다. 얼마 전 탤런트 이영애 본인도 모르는 이영애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가 사과광고를 내는 등 곤욕을 치른 업체도 있지만 엔터테인먼트 업종은 여전히 코스닥시장의 중심에 서 있는 테마다. 텐트제조업체에서부터 섬유, 패션가방, 플라스틱 호스 제조업체에 이르기까지 관련 분야로의 사업내용 변경이 줄을 잇고 있다. 닷컴 열풍 시절 보일러업체와 벽지업체까지 닷컴 냄새가 나게 회사명을 바꾸고 투자자들을 현혹하던 때와 닮은 꼴이다. 한류열풍과 한국영화의 신기록 행진 등으로 영화와 연예기획사업을 중심으로 한 엔터테인먼트 업종이 유망사업으로 떠오르고 있기는 하지만 그 경쟁은 날로 심해질 게 뻔하다. 코스닥기업들의 관련 사업 진출이 줄을 잇고 있는 게 이를 암시한다. 더욱이 인기스타의 수명은 짧고 새로운 스타들은 수없이 부상하는 게 연예기획 사업이다. 어쩌면 신기술보다 더 빠른 주기로 급변할 수도 있다. 대체에너지와 로봇 테마 등 다른 테마도 비슷하다. 이들 분야로 진출을 선언하는 기업들이 어느 정도의 기술 수준을 갖췄는지 검증하기 어렵지만 떼거리로 몰린다는 것 자체가 위험을 가중시킨다. 경쟁이 심화하면서 살아 남는 기업보다 단명으로 끝날 기업이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시장質 위해 철저한 검증 필요 그런데도 여전히 테마만 횡행한다면 시장의 질이 개선될 리 만무하다. 부풀러 올랐다가 한순간에 꺼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치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코스닥지수는 여전히 650선에 머물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650포인트는 과거 닷컴 버블 때의 지수로 따지면 겨우 65포인트다. 2000년대 초 코스닥지수가 283포인트(현 지수로는 2,830포인트)까지 타올랐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의 지수는 4분의1 수준도 채 되지 않는다. 이를 다시 되돌리기 위해서는 허황된 테마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응징, 그리고 외면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5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슘페터의 복수도 끝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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