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술강국의 길

자동차산업만큼 세계화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산업도 드물다. 지구촌이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는 세계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세계 자동차업계는 오래전에 합종연횡의 회오리바람에 휩싸였다. 이런 추세로 가면 전세계에 수십개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있지만 종국적으로 연간 생산규모가 적어도 500만대이상인 대형업체 몇 개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형화가 생존의 조건 비슷하게 돼 버린 셈이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있는 것은 혼다자동차는 예외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혼다는 대규모 생산능력을 갖추지 않고도 GM 포드등과 같은 대형업체들과 경쟁하며 생존할수 있다는 것이다. 작지만 강한 혼다의 생존비밀은 바로 기술력에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이 똑 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는 세계화시대에 기술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전후 선진국 진입에 성공한 핀랜드와 아일랜드의 경우 전국민의 70-80%가 이공계 교육을 받을 정도로 기술을 우대하는 국가라는 사실은 혼다의 생존비결은 국가단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술의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은 적은 없다. 기술입국이니 기술강국이니 하는 말들이 국가정책 목표로 설정된지도 오래됐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기술력을 좌우하는 연구개발(R&D)비도 비교적 큰폭으로 늘고 있다. 가령 정부의 R&D 예산의 경우 지난해 4조9천억으로 16%정도의 비교적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R&D 예산규모는 미국 GM이 지출하는 R&D투자의 3분의 2 정도밖에 안되고 일본의 마쓰시타, 소니와 같은 기업들의 R&D투자보다 적은 실정이다. 이렇게 보면 우선 정부의 R&D 예산을 확대하고 기업들의 연구개발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 경쟁력을 높이고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알수 있다. R&D 예산을 늘리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과제는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이다. 연구개발투자 규모도 적은데 효율성마저 떨어진다면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좁히기는 커녕 중국과 같은 후발국에 추격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R&D 예산의 효율성이 높다는 평가는 드물다. 기술개발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기술정책이 1만달러 소득수준에 맞는 분야를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강구돼야 한다는 점이 꼽힌다. 공연히 3만달러 국가의 기술개발정책을 흉내내거나 승산이 없는 분야에서 과욕을 부릴 것이 아니라 산업현장의 기술력을 높이고 우리경제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에서 기술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박사급 연구인력의 80%가 몰려 있는 대학이 연구개발활동의 중심이 되는 것은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연구결과가 단순한 논문이나 지식생산에 그치지 않고 산업의 기술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방향에서 연구과제를 선정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이 요구된다. 기술개발의 산학연계가 중요한 것이다. 선후진국간에 기술격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것은 선진국일수록 기술개발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산업기술은 민간기업에 맡기고 정부나 공공부분은 논문이나 지식생산에 그치는 학술적인 연구에 치중해야 한다는 논리는 단견이다. 민간 기업부문의 연구개발이래야 상위 몇 개 기업을 제외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잇는 실정이다. 인건비를 비롯한 생산코스트 압력을 견디지 못해 경쟁력이 약화되고 주력산업조차 공동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논문이나 지식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산업기술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많은 분야에서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높다. 대학과 산업간의 벽을 허물고 당장 중국을 비롯한 후발국의 추격에 위협받고 있는 산업의 기술력을 높힐수 있는 방향으로 정부의 기술개발정책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 <논설위원(經營博) srpark@sed.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