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12월 31일] 적정통화량과 물가안정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면 젊었을 때 미국에서 같이 유학했던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각 나라에서 중견교수로 활동하거나 중요 직책을 맡고 있는 학자들이다. 몇 년 전 그들 중 한 명이 필자에게 우스갯소리를 하나 했다. 한국에는 아마도 지금 토끼가 별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왜냐하면 지난 30년 동안 한국에서는 관료들이 항상 두 마리 또는 세 마리 토끼를 잡으러 다녔기 때문일 것이란다. 경기부양과 물가안정이라는 두개의 경제정책목표는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 경기부양을 위해 통화를 풀면 물가가 뛰고 물가를 잡으려 통화량을 죄면 경기가 가라앉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에 비유됐다. 여기에다 무역수지 균형이라는 목표가 하나 더 추가되면 잡아야 하는 토끼는 세 마리가 된다. 미국 정부는 지금 경기부양이라는 한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물가는 나중에 걱정할 일이고 당장은 경기를 부양해 실업을 줄이는 게 시급하다. 사실 미국에서 통화량 수축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이전부터 이미 시작됐다. 미 달러는 미국인의 통화인 동시에 세계인의 통화가 된다는 데 원초적인 문제가 내재해 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달러는 인기가 있었고 국제결제통화로 실수요가 많았다. 이런 수요를 충족시키려면 미국의 무역적자가 전제돼야 한다. 여기에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한ㆍ중ㆍ일 3국을 비롯해 잠재위기를 안고 있는 나라들은 비상용으로 달러를 사들였다. 그래서 발행된 미 달러는 미국 내에 있지 못하고 계속 바깥으로 빠져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처한 상황은 미국과 조금 다르다. 우선 원화는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결제통화가 아니다. 원화공급은 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수요에 부응하면 된다. 경기부양을 위해 당장 올해 말부터 4대강유역개발을 시발점으로 한국판 뉴딜의 대형 건설프로젝트가 추진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중앙은행의 통화 공급도 중요하지만 일반 금융기관의 원활한 자금 중개도 중요하다. 문제는 다가올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이다. 인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조성되면서 시간을 두고 서서히 다가온다. 성장과 고용증대에 따라 통화수요도 커질 텐데 이에 맞춰 통화량 공급이 있어주면 된다. 문제는 적정량의 통화를 공급하는 것이다. 이는 고도의 정책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가능하면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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