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12월 19일] 위기대응 고삐 더 조여라

“이제 우리는 어느 정도 외환위기의 급한 불은 껐다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당정 정례회동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말 대통령의 말대로 우리 경제는 고비를 넘긴 것일까. 최근의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허언만은 아닌 것 같다. 금리와 환율은 떨어지고 주식시장은 폭락세에서 벗어났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작동을 멈춘 금융시장에 열심히 ‘펌프질’을 한 덕이다. 다행히 금융시장이 글로벌 패닉상황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다. 금융경색 완화불구 아직 진행중 외환시장은 지난 11월24일 원ㆍ달러 환율 1,513원을 고점으로 1,200원대까지 떨어졌다.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선데다 한미 달러 스와프에 이어 한ㆍ중ㆍ일 스와프 체결로 외환보유액이 일시에 900억달러나 늘어나는 효과가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제로금리와 발권력을 동원한 경기부양 정책이 달러약세 환경을 제공했다. 주식시장도 10월24일 코스피 938포인트를 바닥으로 단기 랠리에 들어섰다. 줄기차게 ‘팔자’에 나서던 외국인들이 12월 들어 ‘사자’로 돌아서면서 1,200선 돌파를 바라보고 있다. 내년에 유동성 장세가 올 경우 40~50% 이상 주가가 폭등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시중금리도 안정되고 있다. 한은이 1%포인트나 되는 파격적인 기준금리 인하에다,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에 나서면서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CD금리 하락은 주택담보대출금리 인하로 연결돼 꽉 막힌 우리 경제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틔워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신용경색이 다소 풀리고 있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실물위기는 이제 시작단계로 접어드는 상태다. 국내 은행들의 해외자금 롤오버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비상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가 적자경영으로 진입했다는 것이 상황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한때 금융시장의 꽃으로 불리던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이미 쓰러졌거나 신용경색 사태의 주범으로 낙인찍혀 정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세계 자동차시장을 호령하던 미국의 빅3도 ‘죽음을 앞둔 사자’의 모습처럼 초라하기 그지 없다. 최고경영자(CEO)들이 국민들을 향해 ‘살려달라’고 읍소했지만 미 의회는 이를 거부했다. 이제 정부의 긴급구제금융에 의지해 연명하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다. 글로벌 경제는 미국과 일본ㆍ유럽 등 세계 3대 경제축의 동반 침체로 회복시기를 예상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도 경착륙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우리를 둘러싼 글로벌 경제와 무관하게 우리 경제는 괜찮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금융시장 경색으로 시작된 외국인들의 엑소더스가 실물경제 악화와 함께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일본 엔화의 유출로 인한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는 ‘3월 위기설’도 그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정부, 유동성공급 적극 나서야 이런 모든 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고무적인 것은 한국은행의 상황인식 변화다. 수동적이라는 말을 듣던 한국은행이 금리인하에 이어 RP매입, 은행에 10조원 규모의 자금 대출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치면 안 된다. 한발 더나아가 은행채, 우량 회사채 등의 매입도 검토해볼 만하다. 정부도 내년 예산의 70% 상반기 사용뿐 아니라 재정적자를 겁내지 말고 공격적으로 유동성 공급에 나서야 한다. 언젠가는 지금의 관치에 대한 후유증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를 사상 최대폭으로 낮추면서 앞날을 우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동성 과잉으로 다시 ‘거품’을 걱정하는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올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먼 내일을 걱정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당장 굶어죽을 판에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으면 성인병에 걸릴 수 있다는 진단은 무의미하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의 “거품이 불황보다 낫다”는 말이 지금의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해준다. 위기대응 고삐를 더욱 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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