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드컵이후의 주식시장

드디어 그날이 왔다.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한 포르투갈과의 결전의 날이다. 미국과의 경기에서 결정을 내버렸으면 오죽 좋으련만 아쉽게도 여기까지 왔다. 포르투갈이 강호이기는 하지만 결코 넘지 못할 벽은 아니다.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기량을, 국민들은 장외에서 응원을, 그동안 해온 것처럼만 하면 오늘 밤 그 벽은 무너질 것이다. 축구에 의한, 축구를 위한 날들 전국이 온통 긴장과 열정에 휩싸여 있다. 가는 데마다, 모이는 곳마다 붉은 옷과 태극기가 보이고 축구이야기다. 포르투갈을 격파하기 위해 누구를 기용하고, 어떤 전술을 써야 한다는 등 모두가 축구전문가가 됐다. 히딩크 '강제귀화를 위한 출국금지' '오노 골세리머니'에 이르기까지 화제는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대~한민국' '오~필승 코리아'는 이제 유치원생부터 할머니ㆍ할아버지는 물론 산 속 암자의 스님들까지 외쳐대는 건국 이래 최고 유행어가 됐다. 온 국민이 '축구의, 축구에 의한, 축구를 위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다. 48년 만의 첫 승이고 16강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여기다 우리경제의 발전상, 더할 수 없이 열정적이면서도 절제된 응원을 통해 표출되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응집력 등이 세계 각국의 안방에 생생하게 전해지며 국가이미지까지 좋아지고 있다니 신바람이 절로 난다. 열정의 월드컵, 냉정한 증시 이렇듯 온 나라, 전국민이 하나로 뭉쳐 몰입하고 에너지를 분출했던 적이 있었을까 싶다. 그러니 심리적으로는 무엇이든 다 잘될 것 같고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분위기다. 한마디로 '거칠 것이 없어라'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월드컵과 썩 어울리는 궁합이 아닌 것 같다. 많은 전문가들이 월드컵 시작 전에 종합주가지수가 대망의 1,000포인트에 올라설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놓았지만 오히려 월드컵이 다가올수록 주가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특히 지난달 31일 개막식 날 온 나라가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던 것과는 달리 증시는 급랭, 종합주가지수가 3개월여 만에 800포인트 아래로 밀려났다. 한국이 첫 승을 거둔 다음날인 5일에도 증시는 무덤덤했다. 최근 들어 거래대금이 연일 연중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썰렁하다 못해 탈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까지 하다. 월드컵과 증시의 이 같은 부조화는 감성과 현실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돈이 왔다갔다하는 냉정한 현실, 그래서 합리적이고 칼날 같은 판단이 앞설 수밖에 없는 주식시장이 기분과 열정으로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증시 의외성, 축구 못지않다 그렇더라도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월드컵이 국가신인도와 기업의 브랜드이미지를 높여주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직간접적인 브랜드이미지 제고 효과가 14조여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기업들의 브랜드이미지가 좋아지면 경쟁력이 높아지고 제품도 더 많이 팔리게 되며, 기업의 실적이 좋아지면 주가는 오르게 된다. 주가의 예측 불가성에도 기대를 걸어보자. 증시의 의외성은 스포츠세계 못지않다. 세계랭킹과 우승후보 1ㆍ2위였던 프랑스와 아르헨티나가 조예선에서 눈물을 흘리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9ㆍ11 미국 테러참사 후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비관적인 전망을 했지만 증시는 이를 비웃듯 스멀스멀 움직이며 큰 시세를 냈다. 어찌됐든 월드컵 이후 증시가 활기를 띠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우리는 IMF를 거치면서 정신적ㆍ물질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으며 지쳐 있다. 월드컵에, 첫 승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은 이에 대한 심리적 카타르시스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경제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의 아픔과 고통을 보상받고 기를 펴게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주가상승은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오늘 밤 태극전사와 붉은악마들이 일을 내는 것을 보고 싶다. 그리고 온 나라에 물결치는 붉은 열정이 증시에도 전이돼 시세판이 매일 붉게 물드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이현우<증권부장>기자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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