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인 제너럴모터스(GM)의 배리 앵글 해외사업부문 사장(GMI)이 한 달 새 두 차례나 직접 한국을 찾아 관계부처에 재정지원 요청을 하는 모습인데요. 3년간 1조원을 훌쩍 넘는 막대한 적자, 급격히 줄어드는 물량으로 솔솔 불어오던 한국GM의 철수설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GM은 △대출 △세금 감면 등 재정지원 △유상증자 참여 등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한국 정부의 지원이 여의치 않을 경우 한국GM을 팔고 철수할 가능성까지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상황입니다. 메리 바라 GM 본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일(현지시간) 한국GM과 관련해 “생존 가능한 사업장으로 만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비효율적 구조로는 사업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앵글 사장도 지난달 한국GM 노동조합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의 도움이 없다면 현재로서는 해결책이 없다”며 “인원 감축과 구조조정, 철수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검토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GM이 철수해도 법적으로는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2002년 옛 대우자동차를 GM에 팔 때 산업은행은 15년간 한국GM 이사회의 주요 결의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거부권)를 가졌는데요. 이 거부권이 지난해 10월 종료됐기 때문입니다. GM은 이미 2014년 호주 정부의 보조금 지원이 중단되자 호주GM홀덴을 폐쇄하고 호주 시장에서 철수한 전례도 있다.
정부도 7일 한 언론사가 GM이 정부에 3조원의 유상증자에 산업은행이 지분대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보도가 있은 뒤 “구체적인 제안이 없었다”고 내놨던 공식 해명을 “지원 가능성 등을 얘기했다”며 이틀 만에 뒤집었습니다.
GM의 요구대로 유상증자에 참여할 경우 산은은 얼마를 내야 할까요. 한국GM의 지분은 GM이 76.96%, 중국 상하이 자동차가 6.02%, 2대 주주인 산은은 17.02%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유상증자 금액이 3조원이라면 GM과 상하이차가 2조5,000억원을, 산은은 5,000억원을 넣어야 하는 셈입니다. 조금은 빗겨난 얘기지만, 당초 GM의 지분은 50.9%였는데 지난 2009년 한국 정부와 경영정상화 방안을 논의하던 와중에 실권주 인수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단행해 지분율을 크게 끌어올린 바 있습니다.
논의는 시작됐지만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되기 전이라며 섣불리 방향을 예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인데요. 정부부처의 한 핵심 고위 관계자는 “이제 막 논의가 시작됐다. 감자 후 출자전환이 맞는지 증자가 맞는지 아직은 방향을 어떻게 정할지 결정되게 없다”고 말했다. 참고로 2009년 경영정상화 방안 논의 당시에는 GM의 프리츠 헨더슨 회장이 직접 산업은행을 찾기도 했지만 결국 해를 바꿔서까지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었습니다.
한국GM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요. 한국GM이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원인은 수출 급감에 있습니다. 미국 GM 본사가 2013년 말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철수를 결정하면서 쉐보레 브랜드 차량을 생산하는 한국GM의 유럽 수출 물량은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한국GM은 대체 시장으로 러시아를 공략했지만 2014년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수익성이 나빠지자 2015년 러시아 시장에서도 철수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GM의 완성차 수출은 2013년 63만대에서 지난해 39만대까지 급감했습니다. 군산공장 가동률은 20%대로 주저앉았습니다. 내수시장에서도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줄곧 두 자릿수를 유지하던 한국GM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한 자리 수로 떨어졌다. 이런 와중에 인건비가 계속 오르면서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는 게 GM 본사의 판단입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GM 본사가 한국GM을 구조적 적자의 늪에 빠뜨렸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GM 본사가 부품 등 원재료 가격을 비싸게 넘기고 한국GM이 만든 완성차는 싸게 받아 해외 시장에서 팔았다는 ‘이전가격’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한국GM의 매출 중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작년 기준으로 93%에 달했다. 국내 다른 완성차업체보다 10%포인트가량 높은 수준인데요. 산업은행은 수차례 한국GM에 GM 해외법인에 공급하는 반조립 제품 등의 공급가격과 생산원가 등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결국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2대 주주임에도 경영정보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한 셈입니다.
GM 본사가 한국GM을 상대로 ‘이자놀이’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GM은 지금까지 GM 본사로부터 총 3조1000억원을 차입했다. 대부분 연 4.8~5.3%의 비싼 이자를 내고 빌린 돈이다. 신용등급이 낮아 국내외 금융회사 차입이 불가능한 탓에 다른 국내 완성차업체가 부담하는 금융권 이자율의 두 배가 넘는 수준입니다. 지난해만 이자 명목으로 본사에 1,300억원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대규모 차입금은 한국GM이 국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없게 된 게 원인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김성식 국민의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GM에 대한 국내 은행의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은 3년새 5분의 1토막이 났습니다. 2014년말 9,000억원에 달했던 금액이 지난해 2·4분기 기준으로 1,955억 줄어든 건데요. 한국GM의 철수설에 금융기관이 거래를 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수수께끼가 여전히 많은데요. 연구개발(R&D) 비용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014년 이후 2016년까지 3년간 한국GM의 영업손실은 1조3,461억원. 같은 기간 R&D 금액은 무려 1조5,580억원입니다. 영업으로 손해를 본 금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은 연구개발에 쏟아부은 셈인데요. 이는 9,792억원의 영업흑자를 기록했던 2011~2013년 당시 1조7,946억원보다도 많은 수준입니다. GM본사가 R&D 명목으로 한국GM의 이윤을 빼돌리고 있다는 의혹이 여전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밖에도 GM 본사는 한국GM에 업무지원비용과 라이선스 로열티 등으로 해마다 1,000억원이 넘는 돈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한국GM의 대규모 적자가 인건비 등으로 인한 고비용구조가 아니라 GM 본사의 경영 판단 때문이란 해석도 나옵니다. 한국GM의 경우 완성차 중심의 비즈니스모델이 아닌 반조립 제품(CKD)을 글로벌 계열사로 보내는 독특한 경영 모델을 가지고 있는데요. 2012년까지만 해도 이 CKD 수출이 127만대에 달했습니다. 완성차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인데요. 하지만 GM 본사의 유럽시장 철수 등으로 CKD 수출이 급감한 것인데요. 지난해 기준 CKD 수출 물량은 54만대 수준까지 쪼그라들어 있습니다. GM 본사의 글로벌 경영전략에 한국GM의 수출이 줄어든 셈입니다.
특히 이 CKD 수출은 GM 본사가 한국GM의 이윤을 뽑아가는 ‘이전가격’ 논란의 중심에 있는 제품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혹이 풀리기도 전에 정부가 증자·재정지원 요구라는 GM의 요구에 선뜻 응한 모양새가 됐습니다. 대규모 실업이라는 공포 때문인데요. 전문가들은 GM의 ‘벼랑끝 전술’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자동차 업계의 한 정통한 전문가는 “유상증자에 5,000억원 지원하고 경영정보 등을 받지 못하는 것 보다는 그 돈으로 차라리 군산 고장 등을 사 들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며 “그간의 의혹을 풀지도 못한 채 선뜻 유상증자에 나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