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 최대 화두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를 이용한 항암 면역세포치료제의 괄목할 만한 성과들이다. 지난 2012년 관련 기술을 미국 대학에서 이전받은 노바티스는 지난해 8월 혈액암치료제로 미국 판매 승인을 받았다. 그동안 사망선고와 같이 여겨지던 백혈병은 독성이 강한 약물치료로 인해 머리카락이 다 빠진 모습으로 더 익숙해 있었는데 이제는 ‘완치’라는 말이 의료계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가총액 100조원대의 대형 바이오텍 회사인 길리아드사이언스는 새로운 항암 면역세포치료제 분야에 뛰어들기 위해 노바티스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카이트라는 바이오텍 회사를 110억달러에 인수했다.
전통적 항암제들은 독성과 함께 환자 중 10~20%만 약물에 반응해 약효를 나타낼 정도로 낮은 반응률로 유명했다.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 중 80% 이상이 독성만 보이고 약효가 없는 약물을 먹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최근에 나오는 CAR-T 방식의 항암 면역세포치료제들은 완치를 논하는 수준의 놀라운 약효와 함께 그 반응률이 80%를 넘어 100%를 보이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은 꾸준한 기초연구로 ‘면역’에 대한 근원적 이해가 획기적으로 제고됐기 때문이다. CAR-T 항암 면역세포치료제들의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우리 몸에는 정상세포들이 다양한 원인으로 인한 돌연변이로 비정상적인 상태가 되고 일부는 무한 증식하는 암세포가 되기도 한다. 건강한 사람들은 정상 상태로부터 일탈하는 여러 종류의 세포들, 즉 바이러스 등 외부 감염원에 감염된 세포나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암세포를 탐지·제거하는 면역세포들이 부지런히 활동하기 때문에 별 탈 없이 살아간다. T세포·대식세포·수지상세포·자연살해세포 등 다양한 세포들이 탐지·연락과 함께 직접 제거하는 기능을 한다. 이 중에서 T세포와 자연살해(natural killer) 세포가 직접적으로 암세포를 제거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건 면역세포들의 감시망을 피하는 암세포들이 종양으로 발전하게 된다.
CAR-T는 이러한 T세포에 암세포 탐지 기능을 유전공학적인 방법으로 강화시켜 암세포 제거 능력을 획기적으로 키운 것으로 환자 자신의 혈액으로부터 T세포를 분리해 체외에서 유전자 조작을 한 후에 다시 주사하는 방식으로 환자에게 투여되고 있다. 혈액으로부터 세포를 추출하고 체외 유전자 조작, 분리 등의 작업이 매우 까다로울뿐더러 개인 맞춤형으로 대량 생산이 되지 않는 점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 첫 판매 허가를 받은 노바티스의 ‘킴리아’는 입원비 등을 제외하고도 약 5억원 이상이다. 상상을 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에서 의료보험 편입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거의 기적적이라고 할 만큼의 놀라운 효능 때문이다. 완치되는 환자의 경우 상당 기간 받아야 하는 기존 항암치료와 무균실 입원, 골수이식 등의 비용들을 합친 것에 비하면 오히려 싸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러한 획기적인 항암 면역세포치료제도 하루아침에 된 것은 아니다. 킴리아의 임상 1상을 하고 기술이전한 펜실베이니아대의 칼 준 교수의 경우 2012년까지 10여년 넘게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개인 맞춤형 세포치료제의 경우 제약회사들이 할 수 없는 분야라는 등 다양한 부정적 시각에 시달려야만 했다. 20여년간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항암 면역세포치료제가 현실이 됐다. 지금 거론되는 새로운 기술들은 더욱 놀랍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방식으로 한 번 만든 면역세포치료제로 다수의 환자들을 치료하려는 연구와 약효 개선을 위한 연구, 혈액암을 넘어 고형암에서도 약효를 보기 위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 중이다.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지만 동네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은 후 나오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감기 걸렸다는 듯 가족들과 통화하며 웃는 모습으로 귀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유쾌한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