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전날 미국 정부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대상에서 자국이 제외당하지 못하면서 일본 정부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은 전날 각의(국무회의) 후 미국이 철강·알루미늄 수입제한 대상에서 일본을 제외한 것에 대해 “극히 유감”이라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일본의 철강업계에 대한 영향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자국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애써 축소하려 했지만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세코 경제산업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 행정명령을 서명한 8일부터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접촉해가며 일본을 관세 대상에서 제외하기 위한 로비전을 펼쳐왔다. 세코 경제산업상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관세 대상국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면서 자국이 유예 대상국에 포함될 것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서로의 성이 아닌 이름을 부르는 등 친분을 과시하며 자신의 외교 능력을 자랑했던 아베 총리는 미국 정부의 이번 조치로 머쓱한 상황이 됐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미·일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즐기는 골프를 함께 쳤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 뿐만 아니라 장녀 이방카가 조성 중인 여성기금에 5,000만달러(약 557억원)를 지원하고 직접 만찬까지 대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응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그동안 각국은 미국을 잘 활용해왔다”며 “그러한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말을 하기에 앞서 아베 총리를 콕 집어 언급하기도 했다.
국제사회의 대북 여론이 제재에서 대화로 급선회하면서 아베 총리가 북풍 몰이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대북 압력 노선을 국제사회에 줄기차게 호소해온 일본 정부의 생각과 정반대 쪽으로 한국과 미국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열기로 하면서 일본이 논의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 전직 방위상은 지난 10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완전히 일본의 머리 위에서 (일본을 배제한 채) 정해졌다”고 말했고 야부나카 미도시 리쓰메이칸대 특별초빙교수는 “북미정상회담의 급격한 전개에 일본이 방관자로서 배제된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압력 일변도의 대북 정책에 대한 비판론도 거세다. 다나카 히토시 일본종합연구소국제전략연구소 이사장은 마이니치신문에 “(북한에 대한) 압력만 강조해서는 한국과 중국이 허심탄회하게 일본에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에 대북정책을 수정할 것을 주문했다.
지난해 ‘사학 스캔들’ 논란을 덮었던 북풍을 여론 전환의 계기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과 연립 여당인 공명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중의원 3분의 2 이상을 가져가는 대승을 거둔 바 있다. 당시 다수의 시민들이 “국제 안보가 불안한 이상 보수 정당에 표를 던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사학 스캔들’은 모리토모학원이 아베 총리와의 유착관계를 이용해 국유지를 감정가보다 턱없이 낮은 헐값에 매입했다는 논란이다.
총선 승리에도 사학 스캔들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정권을 흔들고 있다. 2일 아사히신문은 모리토모학원 국유지 매각을 담당하던 긴키 재무국이 2015~2016년에 작성한 문서에는 있었던 ‘특례’ ‘학원의 제안에 응해 감정평가를 실시, 가격을 제시했다’ 등의 문구가 재무성이 지난해 5월 국회에 제출한 공문에서 삭제됐다고 보도했다. 재무성은 야당 의원들의 추궁에 모리토모 스캔들을 수사하고 있는 오사카지검에 문서 원본이 있다며 모호한 답을 이어왔지만 공문을 국회에 제출했던 사가와 노부히사 당시 재무성 이재국장이 최근 국세청장직에서 사임하고 실무를 담당한 직원이 자살하는 등 파문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지난 9일부터 일본 주요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이 오른 데이터는 없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17~18일 여론조사 결과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31%로 직전 조사 대비 13%포인트 떨어졌다고 지난 19일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도 같은 기간 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이 33%로 지난달 조사보다 12%포인트 하락했다고 전했다. 지지율 하락에도 아베 총리가 꺼내 들 수 있는 패는 현실적으로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