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집중투표제 의무화-찬성

안택식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

지배주주 전횡 막을 '경제 민주화' 초석

주주총회에서 새로 이사를 선임할 때 소수 주주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집중투표제의 의무화 방안을 놓고 찬반 양론이 거세다.

최근 법무부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선임 때 1인 이상 분리 선출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 추진방안을 국회에 전달했다. 집중투표제는 기업이 두 명 이상의 이사를 선출할 때 3%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요청하면 주총에서 투표를 실시해 표를 많이 얻은 순서대로 이사를 선출하는 제도다. 후보별로 1주당 1표씩 던지는 게 아니라 1주당 뽑을 이사 수만큼의 투표권을 줘 선호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다. 현행 상법은 기업이 정관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있게 해 실제 주요기업에서 운영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의무화 찬성 측은 집중투표제가 대주주나 총수의 전횡을 막는 효과적인 수단인 만큼 기업에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소수 주주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가 이사회 운영을 방해하거나 해외투기자본이나 헤지펀드들이 경영권 분쟁의 도구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반박한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지난 2013년 이후 집중투표제의 의무시행을 위한 상법개정안에 대한 찬반논란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집중투표제의 의무화를 찬성하는 학계와 시민단체, 그리고 정치인들은 사외이사제도가 입법의도와는 달리 경영전횡의 보호를 위한 거수기로 전락했므로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순실의 국정개입 과정에서 드러난 정경유착은 국민의 강한 분노를 유발해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들의 구속으로 표출됐다. 최근 한 대기업 총수일가의 전근대적인 갑질 또한 지배주주의 경영전횡이 없다면 발생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위와 같은 지배주주의 경영전횡 차단과 투명한 기업경영 확보를 위해 소수 주주에게 사외이사선임권에 대한 선택의 폭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업 총수의 지명을 받아 사외이사에 선임된 자가 기업 총수를 감시하거나 견제할 것이라는 기대는 마치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라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므로 수명의 사외이사 중 단 1명이라도 기업 총수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돼 소수 주주에 의한 사외이사가 선출되면 기업 총수의 이사회를 통한 경영전횡을 막고 다양한 계층에 의한 경영 민주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집중투표제에 의한 사외이사제도가 지배주주의 경영전횡을 막을 수 있는 실효적인 대안임이 명백함에도 재계가 신경질적인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은 기업을 주주나 일반 국민을 포함한 이해관계자의 것이 아닌 기업 총수의 개인적인 사유물이라는 전근대적 가치로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 흐름을 외면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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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기업이 헤지펀드에 먹잇감이 되는 제도라고 강하게 비난한다. 현실적으로 경영권의 방어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기업 이사회의 절반 이상이 투기펀드 및 소액주주에게 넘어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재벌기업의 대부분이 순환출자 등을 이용해 과반수 내외의 회사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재계의 입장은 여론을 왜곡하고 있는 과장된 우려에 불과하다. 이러한 점은 현실적으로 헤지펀드가 우리나라의 기업경영에 관여해 주식매각차익을 실현한 경우는 2003년 소버린의 경우(SK의 14.99%)를 제외하고 회사지분의 5~7%(2003년 헤르메스 삼성물산의 5%, 2005년 칼아이칸 KT&G의 6.5%, 2015년 엘리엇 삼성물산의 7.12%) 정도를 매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중투표제의 의무화가 시행돼도 이 같은 규모의 지분으로 1인의 사외이사를 선임하기도 어렵다. 집중투표의 의무화로 헤지펀드가 지분을 확보해 재벌기업의 경영권을 탈취할 것이라는 재계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재계는 또한 집중투표 방식으로 헤지펀드에 의해 단 1명의 이사라도 선출되면 이사회의 부의안건에 제공된 기업비밀이 외부에 유출되거나 기업사냥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재계 측의 우려가 집중투표의 의무화를 반대하는 명분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집중투표제를 살펴보면 선임되는 사외이사가 모두 헤지펀드에 의해 선임되는 것은 아닐 뿐만 아니라 만에 하나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사외이사의 보안 의무 강화로 우려하는 사태를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기업집단이 그 경영전권을 한 치도 양보할 수 없어 집중투표제의 의무화를 수용할 수 없다면 그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서울시에서 도입했으며 금융권과 정치권에서 추진하고 있는 ‘노동이사제도’를 경제민주화와 선진국 진입을 위해 재계가 수용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정부와 의원입법으로 제안한 상법개정안을 기업 측이 한꺼번에 수용하기에는 경영상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상법개정안의 내용 가운데 일단 그 실효성이 가장 강력한 집중투표제의 의무화를 먼저 시행하고 그 시행으로 투명성 확보 및 경영상 부담의 정도를 가늠해본 후에 다른 제도들을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집중투표제 의무화도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기업집단에 대해 사외이사의 선임 시에만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재계 측에서 주장하는 바대로 집중투표제의 의무화, 감사위원의 분리선출, 전자투표제 또는 노동이사제도 등을 동시에 시행할 경우 헤지펀드를 비롯한 소수 주주 측의 사외이사의 수가 지나치게 늘어 헤지펀드의 경영권탈취의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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