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는 삼성의 기본 출자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서 “결국 이재용 부회장이 (생명의 전자 지분 매각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불과 하루 전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매각 방안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공개 발언한 데 이어 김 위원장까지 삼성 지배구조 개편에 연일 압박을 가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10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10대 그룹 전문경영인들과 취임 후 세 번째 간담회를 가졌다. 재계에서는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정진행 현대차 사장, 김준 SK 사장, 하현회 LG 부회장, 황각규 롯데 부회장, 정택근 GS 부회장, 금춘수 한화 부회장,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 권혁구 신세계 사장, 이상훈 두산 사장이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비공개 간담회 직후 브리핑에서 삼성 지배구조 개편을 집중 거론했다. 예전처럼 기한을 못 박아 몰아세우는 데서는 물러났지만 압박 수위는 여전히 높았다. 김 위원장은 “삼성생명이 전자 지분을 보유하는 구도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삼성도 잘 알고 있다”면서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운 문제인 것은 틀림없지만 결정을 하지 않고 시간을 그냥 보내는 것이 가장 나쁜 결정이라는 것을 삼성이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지분 8.23%를 보유한 삼성생명은 보험업법 개정 등을 앞두고 지분 매각 압박을 받고 있다. 법 개정으로 보유 지분에 대한 평가 방식이 바뀌면 삼성생명은 약 20조원의 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하지만 공정거래법과 보험업법, 경영권 방어 문제 등이 얽히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윤 부회장은 김 위원장의 지적에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이 부회장의 결정이 늦어질수록 삼성과 한국 경제가 치러야 할 비용은 더 커질 것”이라며 빠른 결단을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일감 몰아주기는 중소기업의 희생 위에 지배주주 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몰아주고, 나아가 편법승계와 경제력 집중을 불러일으키는 잘못된 행위”라며 “공정경제와 혁신성장 모두를 심각하게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총수 일가가 그룹 내 비주력 회사 지분은 보유하지 않도록 재계가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총수 일가가 비상장 비주력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그룹 물량을 받아 이익을 챙기는 행위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지분 보유 자체를 하지 말라는 요구다. 김 위원장은 다만 “지분 보유 금지는 법률적으로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재계가 자발적으로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과거 세 차례와 같은 방식의 재계 간담회는 당분간 진행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전문경영인들을 나란히 세워놓고 보여주기식으로 이벤트성 행사를 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한재영·강광우 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