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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미식회] 나는 마흔 살 비행 소녀다

수요미식회(美識會)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美) 지식(識)은 자신을 드러내는 글 속에 있다’


이를 깨달은 작가들이 들려주는 솔직한 생각과 인생 이야기입니다.




서비스라는 단어는 라틴어 '세르부스(Servus, 노예)'와 영어의 'Servant(종)', 'Servitude(종의 생활)', 'Servile(종처럼 생활하는)'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자기 희생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항공사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다양한 고객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희생하고 내려놓을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공항이나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보면 항공사 서비스를 악용하는 손님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일부러 직원을 테스트해보는 사람, 직원이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며 자기의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 그냥 자신의 짜증을 만만한 직원에게 푸는 사람, 고함치고 비속어를 남발하며 인격을 모독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이런 사람들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강한 정신과 내면의 힘이 있어야 한다.


항공사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환상을 가지고 입사를 했다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확연히 다른 환경에 실망하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필자 또한 첫 직장을 그렇게 그만두었다. 수직적인 조직문화, 엄격한 선후배 관계, 어리고 순진해 보이는 여직원을 가볍게 대하는 손님들을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힘든 기간은 반드시 지나가고 어떤 조직에도 사람은 적응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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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항공 도하국제공항에서 일하면서 아프리카 아디스아바바에서 온 손님뿐만 아니라 중동의 시리아 유럽의 사이프러스 등 세계를 모두 가보지는 못했지만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카타르항공은 세계에 150개가 넘는 취항지가 있으며 지금도 그렇게 전 세계의 동료들과 전화로 이메일로 그리고 직접 만나서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외국항공사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문화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함께 일하며 세상과 사람들을 보는 나의 시야가 넓어졌다. 카타르의 국민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나라에서 돈이 나오기 때문에 외국에서 노동력을 충원한다. 인구의 90%가 외국인 노동자들인 것이다. 나의 동료들은 제3국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을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그룹은 유럽과 미국 호주에서 온 사람들이다. 선진국의 기술과 머리를 이용하고 싼 노동력을 사용해 거대한 회사가 운영된다. 덕분에 필자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신세계를 경험하며 계속 성장해갔다. 2011년부터 카타르항공의 직원으로 회사가 커가는 것을 가까이서 보며 나도 함께 성장한 것이다.



청소년 시절 내 책상 앞에는 늘 세계지도가 붙어있었다. 동시통역사가 되어 세계를 누비며 살겠다는 꿈을 갖게 된 뒤 세계지도를 보며 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늘 꿈꿔왔다. 하지만 스무살이 되면서 동시통역사가 되겠다는 꿈은 정말 꿈으로만 남게 되었다. 이루려는 노력을 해보지도 않고 가슴에만 남겨두고 포기를 했다. 동시통역사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동경만 갖고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어떻게 기울여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는가를 자문해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도전을 해볼 수 있는 용기도 없었다고 변명을 해보기도 한다. 나의 영어실력이 통역사가 될 만큼의 수준인지에 대해서도 늘 의심이 들었다. 결국 동시통역사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꿈의 직업으로 가슴 한 켠에 남았다.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해보았다면 실패하더라도 거기서 배우고 느끼며 더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항공사에 일을 하다 그만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가 있다. 거기서 일할 때가 좋았다며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 직장이라고 말한다. 항공 공무원이라고 말할 정도로 직종이 안정적이기도 하고 체크인이나 예약 발권 업무는 시스템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반회사보다는 장기근무를 하는 여성이 많고 퇴직정년도 60세까지로 보장이 된다. 외국항공사마다 다르겠지만 육아휴직과 출산휴가도 3개월 이상으로 조정이 가능하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막연한 환상과 동경 때문이 아니라 서비스를 이해하고 거기에서 오는 고충 또한 수용하여 진정한 서비스의 가치를 창출하고 그 일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지만 우선은 자기의 적성과 맞고 내가 하면서 행복하고 보람이 있는 일이어야 한다.

지금 가슴이 뛴다면 한번 도전해보자. 호기심 가득 품고 세상밖으로 나가보자. 세계가 우리의 무대다.

글=책 쓰기로 인생을 바꾸는 사람들(책인사), 작가 김수안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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