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방송 전 공개된 현장사진 만으로도 역대급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멜로퀸 손예진과 떠오르는 신예 정해인의 조합, 두 사람이 우산을 쓰고 걷는 사진은 봄을 맞아 연애세포들이 꿈틀대며 피어오르는 듯한 설렘을 자아냈다.
윤진아(손예진 분)와 서준희(정해인 분)은 예상과 달리 방송 2주 만에 연애에 돌입했다. 여느 로맨스물이 중반이나 마지막회에 가서야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것에 비해 엄청나게 빠른 전개였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고구마 먹기 전에 사이다 마신 듯 시원함을 느꼈다. 이제 두 사람이 꽃길만 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고구마 먹기 전에 사이다 마셨다고 목이 안 막히는게 아니다. 꽃길도 10분 20분이나 걷지 몇시간 걸으면 지치고 힘든 법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전개는 안타깝게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제자리만 맴돌 뿐이었다.
두 주인공이 연애를 시작한 이후 닥친 시련은 윤진아의 엄마 김미연(길해연 분)의 반대, 회사 내 성추행 문제 두 가지 뿐이었다. 이 에피소드들은 이후 10회 가량 이어지며 끊임없이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보통의 로맨스드라마의 경우 이같은 에피소드들을 2주 정도에 해결하고 다른 소재를 입힌다. 하나 해결하고 나면 주인공의 사랑을 가로막는 더 큰 장애물이 등장하는 식이다. 그러나 마지막회를 앞둔 시점까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추가로 등장할 소재가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를 질질 끄는 동안 윤진아는 민폐 캐릭터가 됐고, 서준희는 보살이 됐다.
이전 작품들과는 구조 자체가 다르다. 로맨스물은 사랑싸움, 오해, 삼각관계, 판타지 등의 설정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캐릭터의 경우 ‘최고의 사랑’, ‘질투의 화신’, ‘태양의 후예’ 등의 독특한 인물로 설정한다. 배경의 경우에도 ‘주군의 태양’, ‘시크릿 가든’, ‘도깨비’ 등 판타지적 요소를 적극 활용한다.
즉 현실적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활용한다면 이들을 능가할 만큼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입혀야 했다. 선남선녀의 달달함은 짧고 지루함은 길었다. 늘어질 대로 늘어진 테이프처럼 한두 회 놓쳐도 드라마를 보는데 지장이 없었다. 아무리 달달한 커피도 너무 달면 쓴 법이다.
한눈 팔다보니 시선이 동시간대 경쟁작인 ‘하트시그널2’로 옮겨갔다. 연애 직전까지 썸타는 과정을 담은 순간들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초반과 꼭 닮았다. 로맨스 드라마 속 커플을 4쌍이나 모아놓은 듯한 아우라의 참가자들 모습은 설렘을 안고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다.
첫인상, 데이트, 공동생활 중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마다 참가자들의 마음이 움직인다. SBS ‘짝’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만큼 이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각본 없는 드라마와 같다. 눈치싸움과 질투, 용기가 어우러진 선택의 결과를 MC들과 마주앉아 함께 예측하며 자신이 응원하는 짝이 이뤄지길 바라는 재미가 쏠쏠하다.
결국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하트시그널2’의 경쟁은 각본 있는 드라마와 각본 없는 드라마의 재미와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현실을 벗어난 상상을 가미시킬 수 있는 드라마가 그 상상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했을 때 한계가 뚜렷해진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시청률은 4%대에 시작해 5회에 5%대로 오른 뒤 13회까지 제자리걸음했다. 반면 ‘하트시그널2’는 0.7%에서 시작해 2.2%까지 시청률이 올랐다.
초반 폭발적인 이슈를 만들어내고도 뒷심 부족으로 흐름을 이어가지 못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윤진아가 서준희를 따라 미국을 가냐 마냐의 문제는 ‘사회에 종속돼 살아오던 여성이 연애를 중심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간다’는 드라마의 중반 평가와는 모순된다. 화룡점정을 기대했지만 용두사미가 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연애할 때보다 썸탈때가 더 짜릿하고 흥분된다고 말한다. 이 두 경쟁작을 비교해보건대 절대 빈말이 아니다.
/서경스타 김진선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