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 알록달록, 아롱다롱, 울긋불긋

작가

저마다의 빛깔 내는 의태어처럼

'다름'을 '개성'으로 받아들이고

'차이'를 '차별'하지 않음으로써

이 세상 모든것이 조화롭게 존재




그저 듣기만 해도 마음속에 총천연색 팔레트가 부채처럼 펼쳐지는 느낌을 주는 단어가 있다. 단어 자체에 축제의 흥성거림이 담뿍 묻어 있는 의태어들, 예컨대 알록달록, 아롱다롱, 울긋불긋 같은 어여쁜 의태어들이 그렇다. 사물의 다채로움, 존재의 다양성, 저마다의 개성을 한껏 펼치는 사람들의 인생을 떠올리게 하는 의태어이기도 하다. ‘알록달록’하면 빨강머리 앤의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과 초록색 지붕집의 싱그러움이 떠오르고, ‘아롱다롱’하면 영화가 끝날 때 눈물이 가득 맺힌 채로 극장의 스크린을 바라보는 순간의 벅찬 감동이 떠오르고, ‘울긋불긋’하면 가을의 한가운데 내장산을 빼곡히 덮은 단풍들이 펼쳐내는 지상의 불꽃놀이가 떠오른다.



이런 의태어들을 가만히 소리내어 발음해보면, 저마다의 빛깔을 뿜어내는 것들, 한껏 목을 내밀어 제 존재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꽃들처럼 빛나는 존재들이 떠오른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 엄청난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빨강머리 앤’의 초입부에서는 자신의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를 스스로 혐오하는 앤의 슬픔이 눈에 띈다. 앤은 이 빨강머리 때문에 자신이 완전히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앤은 처음부터 환영받지 못한다. 마릴라는 앤을 보자마자 ‘남자아이는 어딨냐’며 당황한다. 남자아이를 데려와 농장일을 도와야 한다는 목적의식 때문에 지금 눈앞에서 가냘픈 고아소녀가 울음을 터뜨리며 다만 따뜻한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포착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처참한 문전박대의 순간에도 자기 소개를 하며 자신은 그냥 보통 앤이 아니라 ‘E가 들어간 앤(Anne with an E)’이라고 불러달라는 이 당돌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아이에게 마릴라는 연민과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태어나 한 번도 누군가의 넉넉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고아소녀 앤의 붉은 머리 뒤에 감춰진 놀라운 총명함과 해맑은 순수성을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오히려 무뚝뚝하고 융통성 없어 보이는 매튜다. 작품을 계속 읽을수록 우리는 알게 된다. 매튜는 답답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신중함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매튜는 앤이 남자아이가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고도 앤을 ‘보내버려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아무 것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 무엇이든 오래 곱씹어보며 사랑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다.


최근에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으며 ‘알고는 있지만 실천이 잘 되지 않는, 아름다운 문장’을 다시 만났다. 개츠비의 친구 닉의 아버지가 닉의 어린 시절에 해주셨던 말이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싶어질 땐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처럼 좋은 환경을 타고난 것은 아니라는 걸 말이야.” 닉은 어린 시절부터 타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습관을 들여왔다. 그리하여 그는 남에게 쉽게 실망하지 않고, 남을 쉽게 싫어하지 않고, 누구든 오래오래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놀라운 포용력을 지니게 된다. 닉은 그 모든 사람들을 저마다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찬찬히 멀리서 바라볼 줄 안다. 판단을 뒤로 미룬다는 것은 곧 무한한 희망을 품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모두가 개츠비의 갑작스런 부의 축적을 수상쩍어하며 그의 ‘정체성’을 의심할 때, 개츠비에게서 ‘희망을 발견해내는 비범한 재능’과 ‘앞으로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낭만적인 예민함’을 발견해냈다. 개츠비의 ‘차이’를 ‘차별’하지 않음으로써, 개츠비의 ‘다름’을 진정한 ‘개성’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는 이방인 개츠비와 유일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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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다양성’이라는 것이 너무 야단스럽고, 복잡하고, 시끄럽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의 연속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살면 살수록, 차이들이 좋아진다.내가 더 옳고, 내가 더 멋져 보이고 싶은 욕망 때문에 우리는 자칫 타인의 아름다움, 나와 다른 것들의 소중함을 외면하거나 폄하할 수도 있다. ‘알록’과 ‘달록’ 사이에는 위계가 없다. ‘아롱’과 ‘다롱’ 사이에도 우열이 없고, ‘울긋’과 ‘불긋’ 사이에도 서열이 없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평면 위에 조화롭게 존재할 줄 안다. 나는 오늘도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차별 없이, 서열 없이, 그 자체로 제 나름의 빛깔과 향기를 지닌 것들의 신명나는 축제와 향연을 펼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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