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형철의 철학경영] 잡담을 즐겨라

<76>위기의 조직 구하는 리더의 농담

즐기는 사람에겐 누구도 못당해

GE 잭 웰치 잡담으로 회의하고

레이건도 수술대 오르기전 농담

부하 긴장 풀어주는게 A급 리더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미국 동부의 한 명문 대학에서 있었던 일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문학동아리가 하나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꽤 인기 있는 동아리로 성장하자 다른 문학동아리가 하나 더 생긴다. 둘 다 매주 금요일 오후5시에 모였다. 자연히 경쟁 관계에 들어가게 됐다. 그런데 잘 관찰해보니 두 문학동아리의 운영 방식에서 재미있는 차이가 하나 드러난다. 첫 번째 동아리 회원들은 발표가 끝나면 아주 성실하고 날카로운 피드백을 준다. 작품을 거의 해부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발표자들은 발표시간에 이르면 거의 정신이 공황 상태에 빠진다. 자신의 작품 발표 후 피드백에 대한 노이로제에 걸려 있기 때문에 엄청난 시간을 공들여 준비했는데도 역시 그 공포감에서 자유로운 회원은 아무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 지적들 하나하나가 주옥같고 칼날이 서 있기 때문에 반영하고 실천하면 엄청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반면 두 번째 동아리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발표하는 사람 중 지나치게 경직되고 긴장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발표가 끝난 뒤 피드백이 대개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칭찬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잘했네, 시간 좀 쓴 거 같아! 아 오늘 좋은 거 한 수 배웠네! 역시 최고야.” 이런 식의 다소 두루뭉수리한 피드백들이 판을 친다. 그러고는 ‘불금’을 즐기려고 뒤풀이하러 간다. 가서 문학은 뒷전이고 서로 한 주간 쌓인 피로를 푸느라 아마도 삼겹살은 아니었겠지만 고기에 생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을 것이다. 첫 번째 동아리와는 분위가 어떻게 보면 정반대다.


자, 그로부터 수십 년 뒤 한 동아리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여럿 나오고 다른 쪽에서는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어느 동아리일까. 모두 이미 짐작했겠지만 두 번째 동아리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왔다. 문제는 그 이유다. 즐기는 사람을 당할 자가 있을까. 어떤 것을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공자가 논어에서 하신 말씀이다.

관련기사



20세기 가장 위대한 미국의 최고경영자(CEO)를 한 명 들라고 하면 단연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를 꼽을 수 있다. 수십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웰치는 매주 월요일 임원회의를 한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할까. 지난주, 아니 지난달 그룹의 업무지표를 놓고 설전을 벌일까. 뜻밖에도 웰치는 대부분 잡담에 해당하는 말들로 한 주를 시작한다. “자네 어머니 지난번 수술은 잘됐어? 자네 둘째 아들 대학은 원하는 데로 갔는가? 지난주에 골프 쳤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스코어는 잘 나왔나? 원래 마음대로 안 되는 게 골프 아닌가, 하하하.” 이런 잡담(schmoozing)을 세계 최고의 기업 임원회의에서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친밀해져야 일이 되고 친밀해지는 데는 잡담으로 수다를 떠는 것이 최고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암살범 존 힝클리 주니어에게 총을 맞고 응급실에 실려갔다. 수술대에 오르기 전 수술을 집도할 의사에게 묻는다. “나는 자네가 공화당원이기를 바라네.” 물론 고단수의 농담이다. 자신과 같은 당원인 의사라면 자신을 더 잘 수술해줄 거라는 얘기다. 모두 한바탕 웃는다. 지금 세계 최고 권력자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이런 농담을 하는 것은 리더십의 정수다. 그랬더니 의사가 하는 답변도 역시 걸작이다. “대통령님,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조직에 위기가 닥치면 모두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 공중분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리더가 “야,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안 그러면 다 죽는 줄 알아!” 이렇게 말하면 그 사람은 B급 리더다. A급 리더는 긴장할 수밖에 없고, 또 실제로 이미 모두 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하를 더 긴장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긴장을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한다.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데는 잡담과 농담만큼 좋은 것이 없다. 잡담을 즐겨라. 농담을 던져라. 단 잔소리는 하지 말라. 남들에게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맥이 빠지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