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탄(돈)은 있는데 투자할 승차공유(라이드 쉐어링) 기업을 못 찾겠네.’
손정의(사진)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이 세계적인 승차공유 업체에 투자를 이어가는 가운데 유독 한국에서만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최대 1조원 안팎의 실탄을 마련했지만 유난히 까다로운 국내 규제 탓에 꾸준하게 성장세를 이어가는 승차공유 기업이 없어 투자를 진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16일 국내 승차공유 및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최근까지도 카카오(035720)의 교통 서비스 전문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에 투자 의향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승차공유 업계에 밝은 IB 업계 관계자는 “소프트뱅크가 지난해부터 꾸준하게 카카오모빌리티 쪽에 투자 가능성을 타진했다”면서도 “국내 규제 환경이 바뀌지 않아 아직 큰 진전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승차공유 기업의 한 창업자 역시 “소프트뱅크가 1조원 정도를 들고 카카오모빌리티를 비롯해 여러 업체를 들여다봤지만 도저히 규제 문제를 풀기 어렵다고 판단해 투자를 보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앞서 카카오는 카카오택시(현 카카오T)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를 분사하고 세계 4대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로 꼽히는 미국 텍사스퍼시픽그룹(TPG) 컨소시엄으로부터 지난해 7월 5,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당시 소프트뱅크도 카카오모빌리티 투자를 추진했지만 성과를 내는 데는 실패했다.
이후에도 소프트뱅크는 국내 승차공유 업체 투자를 고민했으나 택시 호출을 기반으로 한 카카오모빌리티 외에는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 정해진 출퇴근시간에만 승차공유를 허용하는 국내 현행법 탓에 차량 공유(카 쉐어링) 위주로 시장이 성장했던 상황에서 유일하게 카카오모빌리티만 대형 플랫폼(기반 서비스)의 자리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택시와 승객을 연결하는 사업 구조로 나름의 타협점을 찾았던 카카오모빌리티 역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이익단체 등의 반대로 수익화 계획(유료 호출 도입)을 전면 수정했다. 여기에 더해 순수한 승차공유 업체로 분류됐던 럭시와 풀러스는 홀로 규제에 맞서다가 자체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각각 타사에 인수되거나 사업 모델을 재조정하는 운명을 맞이했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뱅크 등 ‘글로벌 큰 손’도 자연스럽게 한국 승차공유 시장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정수진 KDB산업은행 산업기술리서치센터 차장은 “글로벌 승차공유 기업이 지역 업체를 인수하거나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는 등 투자를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상황에서 국내 시장만 규제와 기존 운송업계 반발에 따른 경험 부족으로 변화에서 소외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국내 승차공유 시장의 글로벌 소외 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소프트뱅크는 이미 미국 우버부터 중국 디디추싱, 싱가포르 그랩, 인도 올라 캡스 등 유럽을 제외한 각 지역 1위 승차공유 기업에 거액을 투자했다. 이후에는 각 승차공유 기업이 불필요한 경쟁을 하지 않도록 지역별 사업재편을 꾸준하게 추진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2017 회계연도 연간 보고서만 봐도 우버(북·남미), 디디추싱(중국), 그랩(동남아시아), 올라 캡스(서남아시아) 등 4개사를 중심으로 한 지역별 승차공유 사업 전략이 명시돼 있다. 카카오모빌리티 등 승차공유 업체가 내수 시장에서 성장하더라도 소프트뱅크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모빌리티 연합군’에 맞서 경쟁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승차공유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결국 ‘자율주행’인데 이대로 규제에 막혀 내수 시장에서 허우적거리다가는 현대·기아차 등 국내 대표 차량 제조사도 해외 플랫폼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민구·양사록기자 mingu@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