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 고위급회담이 연기됐다. 양측 모두 연기의 배경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핵 사찰과 제재완화 문제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상황에서 회담을 여는 데 대해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6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 비핵화 요구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민주당과 공화당이 북한 문제만큼은 회의적 시각을 기반으로 ‘선(先) 비핵화-후(後) 제재완화’라는 원칙을 공유하고 있어 대북 정책과 관련해 양당이 갈등을 빚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민주당 중심의 하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힘 빼기 전략을 구사할 경우에는 북미대화의 속도가 느려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7일 미국 중간선거 결과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도 제대로 된 비핵화가 이뤄지기 전에는 제재완화는 없다는 까다로운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며 “그래서 민주당의 하원 승리에도 대북 정책의 큰 기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다만 기존의 대북 정책에 대해 좀 더 깐깐하게 가야 한다거나 원칙론적으로 가야 한다는 주문이 민주당 쪽에서 많이 올 것으로 관측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면 북한의 인권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북미 협상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 교수는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협상 성과가 지지부진하다고 비판하기 시작하면 북한 입장에서 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역시 “현재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대북 정책에 있어 ‘협상’을 강조하고 있어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가 크게 변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며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도 이제는 국면 전환 차원에서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과 같은 보여주기 이벤트를 할 필요성이 약해졌기 때문에 북한 문제를 관리 모드로 끌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대북 기조는 유지되겠지만 동력 약화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중간선거 결과가 북한에 썩 유리하지 않은 쪽으로 나온 가운데 8일로 예정됐던 북미 고위급회담이 중간선거 직후인 7일 0시 전격 연기됐다. 미 국무부는 헤더 나워트 대변인 명의의 성명에서 “이번주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폼페이오 장관과 북한 당국자들과의 회담은 나중에 열리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각자의 스케줄이 허락할 때 다시 모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진행 중인 대화는 계속해서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무부가 회담 연기 사유를 별도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검증과 제재완화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양측 모두 회담을 현시점에서 진행할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회담 성과가 없을 경우에는 북미 모두 부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국무부 성명에 대화 모멘텀은 유지되고 있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어 협상의 판 자체가 깨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에 대해 외교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미국 측에서 회담 연기와 관련해 사전에 연락을 줬다”며 “아쉽게 생각하지만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우리로서는 이른 시일 내에 다시 회담 일정을 잡아 회담이 개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과거에도 북미회담이 연기된 사례가 종종 있으니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달성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봐야 할 것 같다”며 이번 회담 무산으로 비핵화 협상의 추진동력이 상실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회담 연기와 관련해 미국 정부와 사전에 내용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대통령 외교담당 보좌관은 기자들을 만나 “내년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해 연내로 예상됐던 김 위원장의 방러가 내년으로 연기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