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청계천 공구상들 재개발 대책 마련 촉구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개발 바람에 무너지는 '공구 메카'

세입자 소상공인들 "대체 상권 마련해 달라"

서울 청계천 일대 공구상들이 지난 18일 관수교 사거리에서 세입자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서울 청계천 일대 공구상들이 지난 18일 관수교 사거리에서 세입자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누구를 위한 개발입니까. 한국의 공구 메카, 그 70년 역사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서울 청계천의 관수교 사거리. 청계천 공구상가 상인들이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에 몰려나왔다. 소상공인 대책없는 청계천 재개발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서다.


이날 집회는 한국산업용재협회 서울지회가 주최했다. 청계천 일대에 있는 공구상, 기계상 등이 조합원으로 등록한 단체다. 재개발에 밀려 공구와 기계 상권이 형성된 이 곳을 무작정 떠날 경우 생업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게 이들 소상공인들의 주장이다.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수표도시환경정비사업 지정에 따른 민간개발로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 건물의 세입자인 이들 소상공인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지금의 상권을 계승할 수 있는 대체지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들 전체가 함께 이주해 새로운 공구 메카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책 없이 각자 흩어지면 더 이상 고객이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회에서 만난 63세의 소상공인은 유압기계를 제작한다고 했다. 그는 “유압기계를 맞춤 제작하는데 해당 제품이 필요한 사람은 무조건 이곳을 찾기 마련”이라면서 “재개발이 되더라도 이곳을 대체할 새로운 기계 상권이 형성돼야만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젊어 보이는 한 집회 참가자는 이곳에 자리한 공구 유통점의 직원이라고 했다. 그는 “청계천엔 간단한 공구부터 초고가 수입 전문공구까지 다 있다”면서 “70년 동안 이처럼 고도화·전문화된 상권이 무너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대체 상권 개발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집회 참가자는 “송파 장지동 가든파이브는 비싸서 못 가기도 했지만, 공구와 기계는 백화점 같은 건물의 2층 3층에선 못 팔고 무조건 1층에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상인들은 서울이 아니더라도 경기도의 한 곳에 공구상들이 1층에서 함께 사업할 수 있게만 해주면 좋겠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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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측의 한 인사는 연단에 올라 “우리는 집회도 투쟁도 할 줄 모르는 소상공인”이라면서 “그러나 가족 생계를 위해 투쟁에 나섰으니 강하게 하자. 영세업자도 뭉치면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용재협회 서울지회 측은 “청계천 지역 내 70여년 역사의 공구업계, 정밀가공업계 등 1,000여 소상공인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면서 “서울시와 중구에 현실적인 세입자 대책을 요구했으나 시행사와 건물주에게만 책임을 미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신규 산업용품 단지 조성, 정당한 영업손실 보상 등을 줄기차게 요구해 오다 2016년 ‘청계천 상권수호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집회 등을 개최하면서 대책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대책위 측은 “우리 상인들은 원칙적으로 재개발을 반대하며 건물별 리모델링으로 동일상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시청 및 중구청에서 건물주와 협의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수표도시환경정비사업 지역 내 한 부분을 공구특화지역으로 지정·개발하고 공적 분양해 공구 메카인 청계천 지역의 역사를 계승하게 해 달라”고 촉구했다.

현재 청계천에서 을지로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 개발 대상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종로구 장사동, 중구 을지로동, 광희동이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포함돼 있다. 최근엔 그 유명한 평양냉면 맛집 을지면옥이 재개발 구역에 포함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을지면옥 측은 재개발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구역 내 토지 소유주 75%가 동의하면 재개발을 할 수 있어 언젠가 건물 철거가 시작되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

집회에서 만난 한 소상공인은 “초기에 가든파이브로 갔던 상인들 중 상당수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다”면서 “식당이든 공구상이든 원래 있던 곳을 떠나서는 사업을 장담할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라고 답답해 했다.


맹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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