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세마리 토끼 쫓겠다는 文...경제계 "도대체 대통령 진의가 뭔지…"

<文 '기업 스킨십' 헷갈리는 재계>

"소득주도 공정경제· 혁신성장 어느 것 하나 포기 못해

기업관 달라진 듯 하더니 '스튜어드십 코드' 적극 행사

규제 완화 변한 것 없어…더 이상 립서비스는 무의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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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 최고지도자의 말(言)은 바로 ‘국정운영’ 그 자체다. 국민과 기업은 대통령의 말과 발언에서 국정철학을 읽고 방향성을 감지한다. 특히 지금 한국 기업들의 더듬이는 온통 문 대통령의 말과 행보에 쏠려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기업 관련 발언을 하면서 재계에서는 “과연 대통령의 진의(眞意)가 무엇인지 헷갈린다”는 탄식이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하루는 규제 완화와 투자지원을 약속했다가 며칠 지나지 않아 지배구조 개선과 상법 개정안 강화를 얘기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며 “기업들에 동그란 네모를 그리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혼란해 했다.


문 대통령은 2기 경제팀을 꾸리면서 홍남기 신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기업 투자를 살릴 해결책을 찾으라”는 특명을 내렸다. 김수현 신임 정책실장은 “홍 경제부총리가 경제 사령탑”이라고 말했다. 소득주도 성장을 강조한 1기 팀과 달리 2기 팀에서는 정책 기조에 다소 수정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감을 일게 했다.

하지만 예측은 어긋났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존 경제정책의 수정은 없다”고 못 박았다.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정책 3축에 대해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기업·수출 중심 경제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에 낙수효과는 끝났다”고 촌평했다. 기업들의 어깨는 다시 축 처졌다.


문 대통령의 ‘혼선 발언’은 뒤에도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도 결국 기업의 투자에서 나온다”며 민간의 역할을 강조했다. 새해 들어서는 경제활력 행보에 온 힘을 쏟는 모습이었다. 정점은 기업인 130명을 청와대로 불러 모은 대기업간담회였다. 문 대통령은 공무원이 규제를 입증하게 하고, 전담 지원반을 가동해 투자를 돕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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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후 전국경제투어로 대전을 방문해 성심당 빵집에서 튀김 소보로를 구매한 후 직원들로부터 깜짝 생일 축하 케이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후 전국경제투어로 대전을 방문해 성심당 빵집에서 튀김 소보로를 구매한 후 직원들로부터 깜짝 생일 축하 케이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지난 23일 문 대통령은 “대기업과 대주주의 탈법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다시 채찍을 들었다. 대통령이 국민연금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에 대해 재계는 큰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다. 청와대는 24일 “주주권을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행사하겠다는 원칙을 내놓은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이날 대전을 방문해선 “과학기술·정보통신기술 기반의 창업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란다”며 “정부는 간섭도, 규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문 대통령이 기업 투자를 독려한다면서 모순된 메시지를 내놓고 있는 것에 그야말로 ‘벙어리 냉가슴’이다. 특히 현실적으로 국내 경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지배구조를 정조준하는 정책은 과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크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각종 행사장에서의 격려는 제스처지만 규제는 기업 입장에서 실질적인 조치”라며 “결국 기업은 피부로 느끼는 ‘스튜어드십 코드’와 같은 조치를 심각하게 볼 수밖에 없다. 경제논리에 너무 정치적 논리를 주입하고 있다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일자리 창출’의 주체라고 치켜세우면서 부정적 인식은 여전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문 대통령이 공정경제전략추진회의에서 일본과 한국 중소기업을 비교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한 중소기업 연구소에서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질 때 우리는 대기업에 기술을 빼앗긴 중소기업의 사례를 계속해서 들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기업의 기를 살린다면서 굳이 그렇게까지 자극적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결국 대기업은 악, 중소·벤처는 선, 대기업 때리기는 계속되고 작은 기업에는 규제 완화 등에 나선다는 의미 아닌가”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근본적으로 대통령이 기업정책에서도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큰 틀에서는 국가가 모든 것에 관여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이런 기조에서는 기업의 안정적인 투자활동이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기업은 분배나 공정경제에 신경을 쓰고 혁신성장은 벤처나 중소가 하라는 말처럼 들린다”며 “결국 정부와 재계의 관계가 냉랭할 수밖에 없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출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경제정책을 집행하는 관가에서는 문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선의’를 담고 있으나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경제부처의 한 관계자는 “5년의 짧은 재임기간 동안 세 마리 토끼를 다 쫓을 수는 없다”며 “경기 하방 압력이 높아지는 현시점에서는 성장률을 지키는 정책이 먼저 수반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청와대는 그러나 소득주도 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김 정책실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께서) 혁신적 포용국가라고 하시니 (정책) 전환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을 종종 듣는다”면서도 “전혀 전환이 없다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훈·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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