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통법이 시행되고 10년이 됐지만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국내 증권사들은 ‘한국형 골드만삭스’를 겨냥하며 체질 개선에 나서 한국형 투자은행(IB)의 골격을 갖췄지만 지난 10년간 성장에는 한계를 보였다. 이 같은 ‘잃어버린 10년’을 청산하고 세계 무대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위축된 자본시장을 활성화하는 게 우선이라고 시장 관계자들은 말한다.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금융투자업계가 되면 자연스럽게 자본시장이 활성화되고 이를 기반으로 금융투자업계의 내실도 다지며 글로벌 플레이어와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다.
29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지난해 하반기 증권사가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펀드의 위험값을 기존 24%에서 60%로 올렸다. 이 같은 조처로 딜이 무산되는 경우도 생기자 증권업계가 불만을 토로했다. 신규 부동산 펀드 설정 여력이 줄어들면서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됐다는 것. 선제적으로 위험에 대비한 조치일 수도 있지만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는,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상품의 손발을 묶은 것이라는 불만도 적지 않았다.
시장이 활성화될 만하면 위축시키는 조치를 취하거나 실상 효과가 없는 투자 촉진책을 내놓는 것도 문제다. 국민의 재산을 늘려주는 핵심 수단인 펀드나 노후자금에 대한 세제혜택도 과감히 빗장을 열어야 한다. 장기 펀드 투자자에게 혜택을 주는 목적으로 생겼던 ‘소득공제 장기펀드’가 대표적이다. 이 상품은 가입 대상이 총 급여 5,000만원 이하 근로소득자로 제한돼 가입 가능한 직장인은 정작 투자 여력이 많지 않다는 지적이 높다. 지난해 출시된 코스닥벤처펀드의 경우 돈이 몰렸지만 정부의 후속 조치가 없어 결국 개인투자자들이 손실만 봤다는 하소연이 줄을 잇는다.
금융상품 과세체계에 대한 손질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현행 금융상품 대부분은 손실을 감안하지 않고 이익이 조금만 나도 세금을 내야 하는 구조인데 이익과 손실을 합산해주는 상계(netting)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가입한 10개 해외펀드가 다 손해를 봐도 이익이 난 펀드 하나만 있으면 세금을 내는 방식이다. 세금이 두려운 투자자는 자본시장이 아닌 곳으로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이처럼 자본시장이 위축돼 있다 보니 증권사들도 자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5대 대형사의 지난해 말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은 1,600% 이상이다. 금융당국 권고 수준인 100%를 훌쩍 넘는다. 재무구조가 탄탄하다고 보기에는 움츠린 상태로 새로운 사업을 찾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어느 한쪽에서 성공한 사업 모델을 뒤따라 하는 ‘미투 상품’이 넘쳐나고 업계 스스로가 제 살만 깎아 먹는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말부터 우후죽순 출시되고 있는 양매도 상장지수채권(ETN)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증권사들은 오히려 규제에 묶여 보수적 운용을 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자본활용이 적극적이어야 할 중소증권사들은 부동산 펀드 위험값 규제 등에 운신의 폭이 좁다”고 답답해했다.
금투업계에서는 이제 자본시장이 단순한 재테크 수단을 넘어 산업자본에 마중물을 공급하고 국민 노후까지 책임지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용원 한국금융투자협회장은 “자본시장이 국내 산업에 윤활유 역할을 하도록 불필요한 규제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할 때”라며 “자통법 10년이라는 계기가 만들어진 지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