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의사당에서 ‘위대함을 선택하기(Choosing Greatness)’를 주제로 한 새해 국정연설을 통해 무역과 경제정책, 외교·안보, 이민 및 건강보험, 사회기반시설(SOC) 등 다양한 분야의 구상을 밝히면서 통합과 화해·협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장벽 건설 등에 반대하는 민주당을 겨냥해 연설 시작과 끝 부분에 ‘초당적 협력’을 갖다 붙이면서 민주당의 협조를 구했지만 오히려 외면당한 채 미국 정치·사회의 극심한 분열을 수습할 해결책도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평을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강조한 것은 한층 강화된 보호무역 기조였다. 그는 “우리의 놀라운 경제적 성공을 이루기 위해 수십 년간의 재앙적인 무역정책들을 뒤집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호혜무역법(Reciprocal Trade Act)’ 입법을 의원들에게 촉구했다. 호혜무역법은 교역 상대국이 미국 제품에 불공정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 행정부가 똑같이 보복관세를 매길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다분히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호혜무역법에 대해 “미국산 수출품이 불공정하게 다뤄진다고 판단되면 대통령이 특정 수입품의 관세를 올리거나 해당 국가의 관세·비관세장벽을 낮추는 협상에 곧바로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중국과의 무역협상에 대해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끝내고 만성적자를 줄이며 미국의 일자리를 지키는 구조적인 변화여야 한다”며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도 비판대에 올려 재협상을 통해 체결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이 미국 제조업을 지키고 지식재산권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집권 2년간 미국 경제의 호황을 부각하는 데도 주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례 없는 경제 활력으로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경제”라며 특히 미국이 60여년 만에 ‘에너지 순수출국’으로 부상한 점을 거론하며 “미국은 이제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 1위 국가”라고 자부했다. 그는 이어 “경제적 기적이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막는 유일한 일은 멍청한 정치 또는 우스꽝스러운 당파적 수사”라며 ‘러시아 스캔들’ 특검 수사를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거듭 ‘미국의 힘’을 과시했다. 그는 미국의 방위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로부터 방위비 지출에서 1,000억달러 증액을 확보했다”며 “미국은 군사 증강의 일환으로 최정예 미사일방어시스템(MDS)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그는 “우방이든 적이든 우리 국민을 지키기 위한 미국의 힘과 의지를 결코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위대한 국가들은 끝없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면서 시리아 철군의 정당성을 강조한 뒤 “19년간 7조달러 이상을 중동에 투입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포함해 협상이 진척되고 있는 반면 이란에는 가장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네수엘라 사태와 관련해서는 “결코 사회주의 나라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나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퇴출과 함께 새로운 임시대통령으로 인정한 후안 과이도를 거듭 지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대 정치 이슈인 국경장벽 건설에 대해 “열린 국경을 지지하는 부유한 정치인들이 장벽 뒤에 숨어 사는 동안 미국 노동자들이 불법이민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성토한 뒤 “우리는 국민의 생명과 일자리를 보호하는 이민 시스템을 만들 도덕적 의무를 갖고 있다”며 장벽 건설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는 다만 “합법적 이민자들이 미국을 풍요롭게 하고 수많은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강하게 했다. 나는 그들이 역대 최대 규모로 들어오기를 원한다”며 이민 문호를 열어놓기도 했다. 그는 미국의 비싼 의료비 문제에 대해 “미국인이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만들어진 약을 다른 나라 국민보다 비싸게 사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약값 개혁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연설 내용을 실현하기 위해 “오늘 밤 여러분에게 위대함의 선택을 요구한다”며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고 연설 마지막에도 “의회는 노예제를 끝내고 파시즘을 물리치며 시민의 권리를 찾아줬다”며 역사적 업적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를 다시 초래할 수 있는 정치적 교착 상태를 타개할 실질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미 언론들은 지적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