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이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이행중단을 선언한 데 이어 러시아도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미국과 옛 소련 간 군비경쟁이 뜨거웠던 냉전시대로의 회귀 우려가 한층 짙어지고 있다.
4일(현지시간) 러시아 크렘린궁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냉전 당시 미국과 체결한 INF 조약 이행중단을 지시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은 지난달 1일 러시아의 9M729(신형 지상발사순항미사일, 나토명 SSC-8)의 개발과 배치를 이유로 INF 조약이 유명무실화됐다며 이행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러시아는 이에 대해 “상응조치로 6개월 안에 조약을 탈퇴할 예정”이라고 밝혀왔으며 이날 푸틴 대통령의 서명으로 탈퇴를 공식화한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 협정이 파기되면 새 군비경쟁이 이어질 것”이라며 “미국이 INF 조약 탈퇴 의사를 번복하지 않으면 계속 INF 이행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같은 대외적 발표와 달리 러시아가 자국의 몇 배나 되는 국방예산을 보유한 미국과 장기간에 걸친 핵무기 개발 및 비축 경쟁을 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양국이 INF 조약 탈퇴 이후에도 미사일 배치 경쟁을 억지하기 위한 별도의 합의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지난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지도자가 체결한 INF 조약은 핵무기급 위력을 갖춘 500~1,000㎞ 단거리, 1,000~5,500㎞ 중거리 지상 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시험·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으로 냉전시대 미국과 러시아 간 군비경쟁을 종식하는 토대가 된 조약으로 평가받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INF는 수십년간 유럽 안보의 밑바탕이었다”며 러시아에 INF 조약을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