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중국 화웨이의 5세대(5G) 이동통신 장비를 도입하지 말라는 미국의 권고를 무시하고 이 문제를 회원국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유럽 순방 직후 나온 것으로 시 주석이 순방기간 중 유럽의 ‘반(反)화웨이’ 공조를 막아내는 데 성공한 결과로 풀이된다.
EU 집행위원회는 26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말까지 5G 장비의 보안성을 깐깐하게 들여다보겠다는 내용의 5G 네트워크 전략을 공개했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주목받은 내용은 EU가 5G 네트워크 장비의 위험성을 회원국 스스로 판단하도록 한 점이다. EU는 회원국이 오는 7월15일까지 각국 인프라의 위험성을 평가한 뒤 결과물을 제출하면 EU가 이를 취합해 연말께 회원국들과 내용을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화웨이와 ZTE(중싱통신) 등 중국 통신장비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미국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그동안 화웨이가 중국 정보당국과 연관됐다는 의혹이 있어 서방국가들이 화웨이 5G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안보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줄리언 킹 EU 안보 담당 집행위원은 “이는 (장비) 금지가 아니라 인프라의 위험성과 취약성을 철저히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보안검증)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사 결과에 따라 장비도입 기준을 세우고 잠재적인 위험 장비를 지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U의 발표는 6일간의 유럽 순방을 마친 시 주석이 귀국길에 오른 시점에 나왔다. 시 주석은 순방기간에 주요7개국(G7) 중 최초로 이탈리아의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가입을 이끌어냈고 프랑스와도 400억달러 규모의 경제협력 계약을 체결하며 우애를 다졌다.
유럽의 반화웨이 전선이 깨진 상황에 유럽에서 추가로 일대일로 가입국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있어 미국의 중국 봉쇄전략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랑재경에 따르면 미켈레 제라치 이탈리아 경제개발부 차관은 26일 중국 하이난에서 열린 보아오포럼 행사장에서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두 곳의 유럽 국가가 일대일로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