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건강 에세이] 선택

김용범 순천향대 서울병원 정형외과 교수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출근하거나 외출할 때 어떤 옷을 입을지, 점심시간에 뭘 먹을지, 어떤 영화를 볼지 행복한 고민을 하며 선택한다. 선택의 결과에 때로는 만족하고 때로는 실망한다.

진료할 때도 어떤 검사를 할지, 어떤 약을 쓸지, 수술을 할지 말지 등을 놓고 많은 선택을 한다. 의사들은 자신의 선택이 환자와 가족의 건강·행복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고민하고 신중을 기한다. 의사들이 오랜 기간 교육과 수련을 받는 이유다.


찡그린 얼굴에 팔걸이를 하고 한 손으로는 어깨를 만지고 있는 9세 여자아이가 보호자들과 함께 내게 외래진료를 받으러 온 적이 있다. 어깨 부위 골절이 의심됐다. 작은 병원에서 방사선 촬영 사진을 보고 “쇄골(빗장뼈) 골절 부위가 어긋나 있어 수술이 필요하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해 내원한 것이었다.

내가 “수술을 하지 않고 보조기를 이용한 보존적 치료를 하겠다”고 하자 보호자들은 좋아하면서도 수술을 하지 않고도 뼈가 기능적 문제나 부작용 없이 붙을 수 있을지 걱정하며 매우 혼란스러워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딸의 뼈가 부러진 것만으로도 걱정스럽고 큰 충격일 텐데 어떤 의사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의사는 수술을 하지 말자고 하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보호자들은 잠시 상의를 하겠다며 진료실 밖으로 나가 어디로인가 전화도 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불안해했다. 선택하기 어려웠으리라 짐작된다. 한참 뒤 진료실로 돌아온 보호자들의 눈빛은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그래서 보호자들에게 “저도 딸이 있는데 제 딸이라면 수술 안 한다”고 단호하게 한마디 했더니 안심하며 보존적 치료를 따르기로 했다.


최근 인라인스케이트·자전거 등을 타다가 쇄골이 골절되는 환자가 늘고 있다. 일반적으로 쇄골은 골절되더라도 보조기 착용만으로 기능적 문제 없이 뼈가 잘 붙기 때문에 수술을 하지 않고 보존적 치료만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골절 부위가 많이 어긋났거나, 근육이 부러진 뼈 사이에 끼어 있거나, 신경·혈관 손상이 동반됐거나, 골절된 뼈가 피부에 상처를 만든 개방성 골절 등이 일어난 경우에는 수술적 치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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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보존적 치료를 했는데도 뼈가 붙지 않거나 늦어질 경우 일상생활로의 빠른 복귀를 위해 수술적 치료를 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수술기구의 발달도 한몫했다.

하지만 같은 쇄골 골절이라도 소아의 경우 성인에 비해 합병증과 기능적 문제 없이 뼈가 잘 붙어 웬만하면 보존적 치료를 한다. 수술을 하면 눈에 잘 띄는 부위에 상처가 남는 것도 한 이유다.

다시 쇄골이 부러진 9세 여자아이 얘기로 돌아가 보자. 아이에게 ‘8자형 보조기’를 채우고 보호자들에게 보조기를 채우는 방법과 유의사항을 설명했다. 보조기를 찬 아이는 여전히 찡그린 얼굴에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진료실을 나갔다. 하지만 3주 뒤 다시 외래진료를 받으러 왔을 때는 부끄러운 듯 배시시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이제는 어깨가 아프지 않다며 팔을 움직여 보이기까지 했다. 방사선 사진에서 상처 하나 없이 뼈가 붙은 것을 확인한 뒤 보조기를 풀었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니 아내가 프라이드치킨과 양념치킨 중 뭘 시킬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밥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수고한 남편에게 맛과 영양이 풍부한 치킨을 먹이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 아내에게 바삭하고 담백한 프라이드치킨과 매콤하고 단짠의 극치인 양념치킨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은 매우 어려운 선택이었으리라.

선택이 굉장히 중요한 그때 딸아이가 단호하게 한마디 했다. “양념 반, 프라이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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