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광본 선임기자의 어떻게 지내십니까] "4차혁명시대에도 인성이 중요…유교서 사회문제 해결열쇠 찾아야"

김영근 성균관장 특별 인터뷰

저출산 해법엔 孝 문화로 접근 공동체 의식 회복을

유교의 긍정적 측면 많은데 너무 저평가 안타까워

3·1운동 100주년 맞아 유림 독립운동도 조명돼야

유교망국론은 일제가 심은 식민사관에 놀아난 것

유림, 대한민국 임시정부·독립군 등 적극 참여해

'붓의 투쟁' 파리장서 독립운동 17일 기념식 개최

김영근 성균관장이 최근 서울 명륜동 성균관장실에서 본지에 유교의 사회적 가치와 파리장서 독립항쟁 등 유림의 독립운동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김영근 성균관장이 최근 서울 명륜동 성균관장실에서 본지에 유교의 사회적 가치와 파리장서 독립항쟁 등 유림의 독립운동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요즘 자꾸 유교문화를 멀리하는데 가족의 의미와 공동체 문화 함양, 인성교육, 저출산 문제 해법 등 긍정적 측면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유림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던 점도 조명돼야 합니다.”

김영근(71·사진) 성균관장은 최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장실에서 본지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유교문화의 가치가 너무 저평가돼 있어 안타깝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김 관장은 성균관 부관장과 유도회장 등을 지낸 뒤 지난 2017년 성균관장에 당선돼 유교 대중화에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전국 234개 향교와 800여개 서원에 젊은 인문학 전공자를 각각 한 명씩 파견해 인성교육 등 유교문화를 확산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유림 파리장서 독립항쟁 100주년을 기념해 오는 17일 성균관을 비롯한 전국 향교에서 일제히 파리장서 낭독 등 추모제를 진행할 방침이다.


-수천년 역사의 유교가 많이 침체돼 있다.

△대개 유교를 교육적 관점에서 생각하지만, 유교철학의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로 수많은 문제가 야기되는데 도덕·윤리·인성교육의 부재를 채울 힘이 바로 유교문화에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유교를 고리타분하게 느끼는 사람도 많은데.

△인공지능(AI) 등 과학기술 중심 시대일수록 인간의 본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 인간성과 공동체 문화 회복 등 유교의 사회적 역할이 커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올해부터 인구가 감소하며 나라가 존폐 위기를 맞고 있는데 유교문화의 큰 덕목인 효 교육을 통해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효도를 강조한다고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나.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고 인성교육과 전통문화 계승, 세대갈등 해소, 자살예방, 사회통합 등에 나서면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인구급감 문제에 대해 타 종교는 별로 생각을 하지 않는데 유교는 효 문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자살률이나 저출산·노인빈곤 등이 불명예스럽게도 세계 1위인데 효 문화를 통해 공동체 문화를 살려야 한다. 여성가족부도 여성의 인권만 얘기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임무에 대해서도 고민했으면 한다.

-유교의 사회적 가치가 국민들에게 통할 수 있다고 보나.

△유교의 사농공상 논리 때문에 나라가 발전하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친일잔재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유교의 가치는 사회적 문제 해결에 유용하다. 국회에서도 시정잡배처럼 싸움을 하고 파행이 자주 일어나는데 뜻있는 의원들이 선비정신선양회를 만들어 기대된다. 전국 향교와 서원도 인성교육·전통문화·유교교육의 거점으로 바꿔나가겠다. 각 문화원에도 운영비가 나오는데 성균관과 향교를 지원하는 모법을 만들어야 한다.

-향교와 서원을 어떻게 인성교육의 거점으로 만들려 하는가.

△일부 서원을 중심으로 서원스테이도 있고, 경남의 향교 5곳은 도의 시범사업으로 지킴이가 상주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 인문학 전공자 중 비교적 젊은 층을 선발해 향교와 서원 총 1,000여곳에 지킴이를 각각 한 명씩 상근시켜야 한다. 그래야 지역사회에서 역동적으로 교육할 수 있고 일자리도 만든다. 우선 내년 시범사업을 펴기 위해 60억원을 정부에 요청하고 시도지사에게도 협조를 구하고 있다. 정부가 타 종교에는 지원을 많이 하는데 유교에는 거의 하지 않는다. 삼성도 호암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유교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했는데 왜 창업주의 뜻을 따르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유교 대중화를 위해 형식은 간소화하되 정신은 살려야 한다.

△맞다. 유교문화 활성화를 위해 제사나 시제·차례를 간소하게 지내는 것은 좋지만 정신을 살리려면 가족이나 친족이 스스로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현대식으로 유교도 바뀌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 매진하는 중국이 공자를 강조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중국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1966~1976년) 때 공자를 부정해 다 때려 부쉈다.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으로 경제대국이 됐다. 이제는 시진핑이 사회통합과 세계 패권 추구를 위해 공자학당 확산 등 공자를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미동맹이 물론 중요하지만 동시에 대통령이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석전대제에도 왔으면 한다. 부처나 예수나 국가기념일로 해 공휴일인데 공부자탄강일도 같이 대우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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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근 성균관장이 최근 서울 명륜동 성균관장실에서 본지에 유교의 사회적 가치와 파리장서 독립항쟁 등 유림의 독립운동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김영근 성균관장이 최근 서울 명륜동 성균관장실에서 본지에 유교의 사회적 가치와 파리장서 독립항쟁 등 유림의 독립운동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주제를 좀 바꿔, 올해가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인데 일각에서 유림의 역할을 폄훼하는 시각도 있는데.

△독립운동사에서 유림을 제하면 논할 수 없을 정도다. 유림이 독립운동사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것은 유교망국론을 퍼뜨린 식민교육의 악영향 때문이다. 당시 일제의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유림이었다. 일제가 유림을 와해시키기 위해 유교망국론을 퍼뜨려 내부 분열을 유도했다. 해방 후 친일파를 쓸어버렸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심지어 성균관의 경우도 (KBS 전 이사장인) 이인호씨의 조부가 친일파인데 1950년대 말 관장을 하며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놨던 부끄러운 역사도 있다.

-유교망국론이 식민지근대화론과 맥이 닿아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흥선대원군 때 쇄국정책을 고수했지만 이후 개화책을 펴 구한말 한양에 전기가 들어오고 전차가 운행되는 등 근대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천인공노할 일제에 1차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우리 내부가 부패했다거나 역량이 부족했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사람이 있다. 그러다 보니 식민지근대화론까지 주장하는데 이는 전혀 옳지 않다. 식민사관에 놀아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3·1독립만세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 유림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사실 아닌가.

△당시 천도교·개신교·불교가 중심이 되고 유림은 제대로 연락을 받지 못해 33인에 포함되지 못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수개월 동안 3·1운동이 들불처럼 번질 때 유림의 역할이 매우 컸다. 일제강점기 국내외 독립운동가들 중에는 유림이 많았다. 당장 3·1운동을 전후로 유림은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를 작성, 전국 유림 대표 137분이 서명해 독립의지를 만방에 떨친 한국 유림 파리장서 독립항쟁을 전개하다 옥고를 치렀다. 유림은 개신교와 연합해 독립선언서인 선언장서를 써 종로에서 크게 외치고 일제 총독에게 전달하다 역시 고초를 겪었다. 앞서 1911년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한 것도 유림이다. 1920년 독립군 자금 마련을 위해 국내에 잠입해 독립운동의 열기를 다시 촉발한 2차 유림단 독립운동으로 재차 대거 구속됐다. 많은 유림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고 항일 무장투쟁에 뛰어들었다.

-파리장서 독립항쟁 100주년인데 이를 자세히 소개한다면.

△유림은 3·1독립만세운동에 적극 호응해 2,674자에 달하는 장문의 독립청원서를 제1차 세계대전을 결산하는 파리강화회의에 보냈다. 중국 상하이의 각국 외교사절단과 국내 기관, 향교 등에도 배포했다. 이를 주도한 유림 500여명이 옥고를 치르는 등 탄압을 받았다. 이른바 ‘붓의 투쟁’을 통해 세계에 우리의 독립의지를 알렸고 국내에도 널리 독립정신을 고취했다.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적 의미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해 매우 안타깝다. 성균관은 137분의 독립지사 추모제를 지내왔는데 올해는 15일 학술대회와 자료전시회에 이어 17일 성균관은 물론 전국 모든 향교에서 동시에 파리장서를 낭독하는 등 성대하게 기념식을 연다.

김영근 성균관장이 최근 서울 명륜동 성균관장실에서 본지에 유교의 사회적 가치와 파리장서 독립항쟁 등 유림의 독립운동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김영근 성균관장이 최근 서울 명륜동 성균관장실에서 본지에 유교의 사회적 가치와 파리장서 독립항쟁 등 유림의 독립운동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유림 독립운동의 근원을 꼽는다면.

△나라가 위급할 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의(義)를 생각하는 선비정신에 근거한다. 유림은 구한말 일제의 침탈에 맞서 의병투쟁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반발한 을미의병, 1905년 말 을사늑약에 저항한 최익현·민종식·신돌석 등을 주축으로 한 을사의병, 고종의 강제퇴위와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맞선 정미의병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기업인 출신으로 경영 스토리도 들려달라.

△1970년대 초 전자부품 제조업도 하고 기계 제조업도 하다가 1990년대 후반에 그만뒀다. 2000년께 동생(김영기)이 하던 착즙기 업체인 휴롬에 합류해 회장을 하다가 지금은 명예회장이다. 요즘 유통의 흐름이 홈쇼핑도 잘 안 되고 오프라인 매장도 무척 힘들어 중국의 첨단 유통기법을 배워야 한다. 그쪽의 유통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하고 있지 않나.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김해에 왔을 때는 김해 장군차영농조합장이었는데 같이 차 재배를 하려 했던 적도 있다. 성균관장도 사업 마인드를 갖고 일하는 자리라고 보는데 문재인 정부도 좀 시장 자율에 맡기면 좋겠다. 그게 안 되는 게 문제다. /kbgo@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김영근 성균관장은

1948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김해향교 장의와 유교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위원, ㈔서원연합회 이사, 성균관 수석부관장, 제23대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 등을 역임했다. ㈜남광정밀 대표와 ㈜강동산업 대표, ㈜휴롬 회장 등을 지내고 현재는 ㈜휴롬 명예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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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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