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이란核 데드라인 60일…중동리스크 '일촉즉발'

로하니 4년전 핵협정 시사하듯

"유럽, 금융·원유수출 약속 지켜야

60일 이내 정상화 조치 없다면

고농도 우라늄 농축할 것" 엄포

美 압박에 결국 강대강 대치로

트럼프 '核외교'도 시험대 올라




미국의 제재를 받아온 이란이 서방국과의 핵 합의(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 일부 합의사항 이행을 중단하고 사실상 핵 개발을 재개하기로 선언하면서 아슬아슬한 긴장상태를 이어온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일촉즉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란의 강공은 미국이 대(對)이란 제재를 차례로 복원하고 이란산 원유수입 금지 예외 조치를 중단한 데 이어 항공모함과 폭격기 급파를 밝히며 경제·군사적 압박 수위를 끌어올린 것이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다. 페르시아만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가 한껏 고조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동 핵 외교’도 시험대에 올랐다.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날 국영방송을 통해 중계된 대국민연설에서 “(영국·독일·러시아·프랑스 등) 유럽은 이란에 한 경제적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유럽이 60일 안에 이란과 협상해 핵 합의에서 약속한 금융과 원유 수출을 정상화하지 않으면 우라늄을 더 높은 농도로 농축하겠다”고 압박했다. 핵 합의 이탈에 앞서 마지막 협상 테이블로 유럽을 불러들인 것이다. 로하니 대통령이 정한 60일은 핵 합의 26조와 36조에서 정한 이의제기 절차에 걸리는 기간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당장 핵무기 제조로 이어질 수 있는 활동을 재개하지는 않겠지만 60일 이내에 별다른 해결책이 도출되지 않으면 핵 합의는 타결 4년 만에 사실상 붕괴된다.


이란 안보정책을 결정하는 최고국가안보회의는 이날 60일 내 유럽과의 협상이 실패할 경우 우라늄 농축도를 올릴 뿐 아니라 아라크 중수로의 현대화를 중단하겠다고 결정했다. 이란 중수로는 핵 합의에 따라 핵무기 제조에 부족한 양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 변경됐는데 이 설계 변경의 중단은 핵무기와 직결된 플루토늄을 본격 생산하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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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국영방송 IRIB를 통해 생중계된 대국민연설에서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이행을 일부 중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테헤란=EPA연합뉴스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국영방송 IRIB를 통해 생중계된 대국민연설에서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이행을 일부 중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테헤란=EPA연합뉴스


이란은 지난 2015년 미국과 중국, 유럽 4개국 등 6개국과 핵 협정을 타결하면서 우라늄 농축시설 축소, 우라늄 농축 농도·총량 제한,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중수로 설계 변경,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등 핵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조건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후 2년여 동안 핵 합의를 준수했음에도 미국이 지난해 핵 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데 이어 미국의 동맹국인 유럽 국가들도 눈치를 보며 소극적인 태도로 임해 경제적 이득을 전혀 얻지 못했다는 것이 이란 정부의 주장이다. 실제 유럽 서명국과 유럽연합(EU)은 이란의 경제적 이득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의 제재를 우회해 이란과 유럽 기업이 교역할 수 있는 금융전담 회사 ‘인스텍스’를 올해 1월 설립했지만 석 달이 지나도록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상황이다.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국 국무장관과 바르함 살리 이라크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이라크 대통령 집무실에서 만나 최근 이란 상항 등을 둘러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바그다드=로이터연합뉴스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국 국무장관과 바르함 살리 이라크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이라크 대통령 집무실에서 만나 최근 이란 상항 등을 둘러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바그다드=로이터연합뉴스


여기에 최근 들어 미국의 강경한 대(對)이란 정책이 이란을 핵 합의 이행 중단으로 내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지난해 5월 핵 합의에서 공식 탈퇴한 후 그해 8월부터 대이란 제재에 돌입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에는 석유수출 금지 등 경제·금융 분야에 대한 전면 제재에 나섰다. 대이란 경제 봉쇄망 조이기에 주력하던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들어 군사·외교적으로도 대이란 압박 수위를 끌어올렸다. 지난달 8일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IRGC)를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트럼프 행정부는 5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명의의 성명에서 에이브러햄링컨 항공모함 전단과 폭격기들을 중동 지역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에 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익명을 요청한 미 정부관리들을 인용해 “이란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중동에 배치하는 폭격기 중에는 B-52 4대가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중동지역에 배치됐던 B-1폭격기와 비교해 B-52는 장거리 작전이 가능하고 핵 탑재 능력도 갖췄다.

CNN 등 주요 외신은 이번 사태가 미국과 유럽의 동맹관계를 압박하고 국제적 긴장감을 고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 전날 유럽순방 중 독일 방문 일정을 돌연 취소하고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이라크를 ‘깜짝 방문’한 것도 대이란 ‘최대 압박’ 방침에 따라 미국과 이라크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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