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죠. 언제까지 해야 하나 하는 사이 20년이 지났습니다. 여성시‘대’라는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따고 또 따며 공부한 기분입니다.”
양희은은 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MBC 표준 FM ‘여성시대’ 진행 2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그저 1~2년 하려고 생각했는데 20년이 됐다. 하루하루가 쌓인 것뿐”이라며 이처럼 담담한 소회를 밝혔다.
‘여성시대’는 지난 1975년 유엔이 ‘세계여성의 해’를 선포한 것을 기념해 탄생했다. 그해 임국희의 ‘여성살롱’으로 첫 방송을 시작한 후 1988년 지금의 ‘여성시대’로 프로그램명이 바뀌어 31년이 됐다. 매일 오전 9시5분~11시에 청취자들을 만나고 있다. 양희은은 1999년 6월7일 처음으로 ‘여성시대’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오는 7일에는 MBC라디오가 20년 이상 공헌한 진행자에게 수여하는 골든마우스상 헌정식을 갖는다. 양희은은 역대 아홉 번째 수상자다.
양희은이 그동안 읽은 편지는 무려 5만8,000여통, 방송 시간은 1만4,600시간에 달한다. 양희은은 장수 비결에 대해 “비결은 없다”며 “전달을 정확히 하려고 애썼다. 사연에 사투리가 들어가면 사투리도 섞어가며 사연을 읽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으로는 말기 유방암 환자였던 ‘희재 엄마’를 꼽았다. 양희은은 “희재 엄마는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편지를 사흘에 걸쳐 써 보냈다”며 “애청자들의 뜨거운 마음이 응원 메시지로 쇄도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희재 엄마가 결국 세상을 떠났을 때 당시 자신의 30주년 음반을 희재 엄마와 이 땅의 소녀 가장들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여성시대’가 가지고 있는 힘은 무엇일까. 양희은은 “편지를 써 보내주시는 분들의 가슴에서 나온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어디에도 차마 털어놓지 못하는 얘기를 알아듣는 사람들이 여기 ‘여성시대’에 있고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자기 객관화가 된다”며 “매 맞는 엄마가 쉼터로 갈 수 있는 용기, 연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깨달음, 보이지 않는 공감의 파도가 ‘여성시대’가 주는 힘과 위로”라고 말했다.
1993년부터 ‘여성시대’ 작가로 활약해온 박금선 작가도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박 작가는 “청취자들이 사연을 보내면서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양희은 선생님이 안아주실 것 같고 비밀을 지켜주실 것 같고 약한 사람들을 대신해 혼내주실 것 같아서 사연이 많이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양희은은 “힘들고 지치고 고단하고 콘서트와 함께할 때도 ‘여성시대’를 해왔다는 건 긴 세월의 짝사랑 같다”면서도 “‘여성시대’라는 자리를 힘으로 알고 휘두르려 한다면 그때는 마이크를 내려놓아야 할 거다. 그럴 때는 친구들에게 지적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