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원격의료 불법·온라인 조제도 막혀…韓 바이오 경쟁력 11단계 추락

[셀트리온 사례로 본 K바이오 '올가미 규제']

차세대 헬스케어 총아 DTC서비스

병원 없인 암·치매 등 검사 불가능

신선난자 연구 원천적으로 금지

공익목적에만 의료 빅데이터 활용

비의료 건강관리 서비스 가이드라인

범위 모호해 매번 유권해석 받아야

2415A02 선진국보다 까다로운 규제에 신음하는‘K바이오’



선진국보다 까다로운 규제가 ‘K바이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규제를 갖춘 나라에서 국내 기업들이 이 정도의 성과를 글로벌 무대에서 거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자조 섞인 평가도 나온다. 정부도 최근 ‘규제 샌드박스’ 등으로 규제 완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지만 업계에서는 근본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원격의료다. 의료인이 의료기관이 아닌 원격을 통해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고 진료를 제공하는 원격의료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에 막혀 지난 2000년 이후 20년째 시범사업만 실시돼왔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중국도 원격의료를 활용한 첨단 의료기기와 헬스케어 서비스를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한국은 철저히 시장에서 소외되고 있다.

전문의약품을 온라인으로 처방받아 택배로 받아보는 원격조제도 국내에서는 불가능하다. 의료계는 의약품 오남용 문제를 이유로 반대하지만 정작 세계 최대의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서는 온라인 약국이 성업 중이다. 지난해 미국 아마존은 온라인 의약품 배송 업체 필팩을 10억달러에 인수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를 갖추고도 여전히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의약품을 구입해야 한다.


차세대 헬스케어 산업의 총아로 불리는 소비자직접의뢰유전자검사(DTC) 서비스도 규제에 발이 묶여 있다. DTC는 개인의 유전자가 담긴 혈액·침·머리카락 등을 분석 업체에 보내면 건강 상태와 질병 여부를 알려주는 서비스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탈모나 비만같이 건강과 관련한 열두 가지 항목만 이용할 수 있다. 암이나 치매 같은 질병을 검사하려면 반드시 병원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DTC 서비스의 취지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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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야도 ‘올가미 규제’에 막혀 신음하기는 마찬가지다.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의 핵심인 난자 연구도 신선 난자는 원천적으로 막혀 있고 의료 빅데이터도 공익 목적의 연구만 가능하다. 최근 정부가 의료기관 밖에서 시행할 수 있는 헬스케어 항목을 정한 ‘비의료 건강관리 서비스 가이드라인’도 범위가 모호해 서비스를 실시할 때마다 매번 정부로부터 유권해석을 받아야 할 정도다.

정부 규제가 K바이오의 성장동력을 약화시키면서 한국의 바이오 산업 경쟁력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미국 컨설팅 전문기업 푸가치컨실리엄은 2017년 한국의 바이오 경쟁력을 후발주자인 ‘추격그룹’으로 분류했다. 이란·대만 같은 국가보다 경쟁력이 떨어져 칠레·멕시코와 같은 그룹으로 묶였다.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티픽아메리칸이 선정하는 국가별 바이오 경쟁력 순위에서도 한국은 2009년 15위였지만 지난해 26위로 급락했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K바이오가 한국의 미래 핵심 산업으로 도약하려면 지금이라도 과감한 규제 완화와 실질적인 정책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금지하는 조항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도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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