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남 따라 않고 한우물...벨벳으로 세계1위 됐죠"

'여성경제인의 날' 금탑산업훈장 류병선 영도벨벳 대표

물세탁 가능 '스리 이글 벨벳' 개발

1974년 美에 첫 수출...반응 폭발적

전체 매출 중 76%가 해외서 나와

장학재단 설립 매년 3억 상당 지원




“이번 여성경제인의날에 금탑산업훈장을 받게 돼 매우 영광입니다.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부끄럽지 않은 기업인이 되도록, 그리고 많은 여성에게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기업인이 되게끔 노력하겠습니다.”

류병선(80·사진) 영도벨벳 대표는 1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제23회 여성경제인의날’ 행사에 앞서 본지와 만나 이같이 밝혔다. 류 대표는 여성 기업인으로서 영도벨벳을 세계 벨벳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로 육성하고 각종 사회공헌활동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이날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날 류 대표가 입고 온 한복도 100% 벨벳으로 만든 제품이었다.

류 대표는 배우자인 고(故) 이원화 영도섬유 회장과 함께 지난 1960년 대구에 영도섬유공업사를 설립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벨벳이 ‘비로도’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당시는 이 ‘비로도’ 중 대다수가 일본에서 들어오는 밀수품이었다. 류 대표는 “남편과 함께 일본 밀수품이 아닌 ‘우리 벨벳’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연구를 거듭했다”고 회상했다.


류 대표 부부가 집념과 노력 끝에 개발한 것이 ‘스리 이글 벨벳(Three Eagle Velvet)’이다. 독수리 세 마리를 벨벳 셀비지(selvage·직물 가장자리)에 새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류 대표는 “당시 독일에서 들어오는 벨벳에는 선이 세 개 그어져 있었다”며 “그러나 ‘남들 하는 것은 따라 하지 말자’는 생각에 독수리 세 마리를 새겨넣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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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 이글 벨벳’은 1974년부터 미국에 수출되기 시작했다. 한국산 벨벳이 해외에 수출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현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무엇보다 ‘물세탁을 해도 되는 벨벳’이라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벨벳은 가격이 비싸고 세탁이 매우 까다로운 직물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에 힘입어 영도벨벳은 2001년부터 세계 벨벳 시장 점유율 1위 자리에 올랐다. 영도벨벳의 전체 매출 중 76%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영도벨벳은 벨벳에만 머물지 않았다. 2005년 세계 최초로 액정디스플레이(LCD) 패널 제조용 러빙포를 개발해 정보기술(IT) 소재 시장에도 발을 내디뎠다. 이 러빙포는 현재 미국과 중국 등에 수출되고 있다.

2012년에는 대구에 벨벳박물관을 열기도 했다. 류 대표는 “후배들에게 한 분야에서 열심히 하면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박물관을 열었다”며 “사람들에게 벨벳의 활용 분야가 다양하다는 점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류 대표는 2014년 보광명문화 장학재단을 설립해 매년 3억원 상당의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류 대표는 “남은 생애 봉사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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