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벌링던 클럽




세계적 명문의 옥스퍼드대에는 최상류층 사교클럽이 있다. 가문·재력·학력에서 상위 1%에 속하는 백인 남성들로 구성되는 이 클럽에 가입하려면 기존 회원 추천을 거쳐 까다로운 내부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라이엇클럽(The Riot Club)’은 폐쇄적이고 특권적인 이 모임을 통해 신사로 포장된 영국 상류층의 위선적인 속살을 꼬집는다.


이 영화의 소재는 옥스퍼드대의 ‘벌링던 클럽(Bullingdon Club)’이다. 벌링던 클럽의 역사는 17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냥과 크리켓을 즐기기 위해 30여명이 모인 것이 모태가 됐다. 이 모임은 국왕 4명과 총리 2명을 배출했다. 전 국왕이었던 영국의 에드워드 7세·8세와 태국의 라마 8세, 덴마크의 프레데릭 9세 등이 이 클럽을 거쳤다. 2007년에 공개된 한 장의 사진 때문에 클럽의 정치 인맥에 시선이 집중됐다. 1987년 클럽 회원들을 찍은 사진에서 보수당 소속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와 보리스 존슨 총리를 볼 수 있다. 사진 공개 당시 캐머런은 보수당 당수였고 존슨은 런던시장에 당선되기 직전이었다. 절친이었던 두 사람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슈를 놓고 각각 찬성(존슨)과 반대(캐머런)의 선봉에 섰다. 이 모임은 난봉에 가까운 음주 파티로 악명이 자자하다. 영국 가디언은 이 클럽이 1980년대 신입 회원들을 받을 때 통과의례로 하던 행동들을 보도했다. 매춘 여성을 동석시키거나 물건들을 마구 부수는 극단적 파괴 행태가 지적됐다. 일부 회원들은 서민층 비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존슨 총리가 당시 모임에서 적극적으로 이런 행동들을 했다는 목격자의 폭로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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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국에서 이 클럽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존 맥도널 노동당 예비내각 재무장관은 지난달 29일 존슨 총리를 겨냥해 “총리실을 벌링던 클럽처럼 운영한다”고 비난했다. 존슨 총리가 벌링던 클럽 출신의 후배인 조지 오즈번 전 재무장관을 차기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로 앉히려고 시도한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존슨은 더벅머리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서민적 풍모로 인기를 끌어 총리직까지 올랐다. 존슨의 과거와 현재를 보면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한 한국 권력층 일부의 두 얼굴 행태가 오버랩됐다. 진영을 떠나 말과 행동의 일치가 ‘상식 정치’의 첫째 요건임을 실감하게 된다. /김광덕 논설위원

김광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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