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의 전환점으로 주목받는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 대일 축하 사절을 확정 발표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와 총리실 안팎에서는 오는 22일 즉위식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할 가능성을 가장 높이 본다. 그간 ‘지일파’로 불리며 한일 양국에서 동시에 해결사 역할을 요구받아왔다는 점에서다. 일본 언론에서도 최근 이 총리가 참석할 것이라는 관측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다.
한일 관계 ‘톱다운 외교’ 강력 작동
이 총리가 방일하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이 총리는 기자 시절 도쿄 특파원, 의원 시절 한일의원연맹 부회장·간사장 등을 역임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도 구면이다. 지난 2005년 아베 총리가 관방장관 지명자 시절 방한 했을 때 회동한 적이 있고 지난해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도 양자 회담을 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최악의 국면에서 이 총리의 방일 자체만으로는 험악한 분위기 완화, 그 이상의 극적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한일 양측 모두 외교에 ‘톱다운’ 방식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어서다. 국면 전환의 열쇠를 오롯이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쥐고 있다는 의미다.
대통령 방일 카드도 검토됐지만…
이런 점에서 양국 학계·정계에서는 한때 문 대통령이 일왕 즉위식에 직접 참석하는 ‘정공법’을 시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 국민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대승적 행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 방안을 놓고 한일 고위급이 비공식 접촉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강제징용 배상 해법을 둘러싼 한일 간 입장 차가 워낙 큰 데다 무엇보다 아베 총리의 속내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점이 물밑 협의의 진전을 막았다. 우리 정부는 고심 끝에 기대 효과보다는 위험 부담이 큰 외교적 모험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의 방일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한일 관계 악화는 물론 문재인 정부 전반에 대한 지지율 악화로 이어질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총리가 직접 대통령 의중 전해야”
그러나 해결책 모색을 또 미루기에는 현재 한일관계가 너무 위급하다. 다음달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종료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강제징용 판결 관련 일본기업의 압류자산 현금화라는 더 큰 파도가 기다리고 있다. 연내 몰아닥칠 가능성이 큰데 일본 극우 세력이 이를 다시 한 번 한국을 공격할 빌미로 삼기 위해 벼르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 총리가 일왕 즉위식에 가게 된다면 이 총리의 일본 내 인지도, 한국 권력 서열 2위라는 지위, 일본어 실력 등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양 교수는 “이 총리의 방일은 연내에 한일관계를 풀어보겠다는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일본 측에 전달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이 총리가 문 대통령의 친서를 아베 총리에게 전달하면서 문 대통령의 의중을 직접 설명하는 구도가 현재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 해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