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우량기업 노리는 무자본 M&A...'기업사냥 불공정거래'로 개념 바꾼다

[거래소·금융당국·檢 '무자본 M&A' 공동대응]

"무자본 M&A는 가치중립적 느낌...개념 구체화 필요

대형화·지능화 추세에 규제기관 간 공조체제 필수"

금감원, 최근 5년 34건 적발...부당이득 3,000억 육박




지투하이소닉은 한때 삼성전자 등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휴대폰 카메라 부품을 납품하던 우량 코스닥 업체였다. 지난 2013년도에는 주가가 9,000원에 육박하며 유망주 대접을 받았다. 시가총액은 지난해 한때 8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지투하이소닉의 주가는 지난해 795원까지 폭락했으며 현재는 거래정지 상태다. 자본잠식률이 87%에 달하면서 올해 초에는 감사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을 받기도 했다. 지투하이소닉이 몰락하기 시작한 것은 곽모(46)씨가 지난해 회사를 인수하면서부터다. 그는 무자본 인수합병(M&A) 202억원에 지투하이소닉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자회사의 지분매각 계약을 동시에 체결했다. 무자본 M&A는 기초 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다른 법인의 지분 등을 끌어모아 담보대출을 받아 회사를 사들이는 것을 뜻한다. 곽씨는 전 대표이사와 입을 맞춰 “돈을 다 갚았다”는 내용의 공시를 내놓았지만, 사실은 자회사 매각대금 등을 횡령해 사채를 갚는 데 썼다. 이를 통해 그가 유용한 회사대금만 수백억원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전환사채(CB)를 100억원 발행하면서 피해를 투자자들에게 전가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4월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선고받았다.

한국거래소와 금융당국이 지투하이소닉 같은 사례를 예방하기 위해 공조에 나선다. 우선 그 출발점으로 가치 중립적인 뜻을 담고 있던 ‘무자본 M&A’를 ‘기업사냥형 불공정거래’로 개념을 구체화하며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19일 한국거래소에서 ‘기업사냥형 불공정거래 대응방안’이라는 이름의 합동 워크숍을 개최했다. 금융당국이 ‘기업사냥형 불공정거래’라는 주제로 합동 세미나를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세미나에는 김진홍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장, 김영기 서울남부지검 증권합동범죄수사단장, 김영철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장, 송준상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송 시감위원장은 “대형화·지능화되는 기업사냥형 불공정거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규제기관 간 공조체제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사냥형 불공정거래는 무자본 M&A를 통해 기업을 인수한 뒤 회사 자금을 빼돌리는 행위를 뜻한다. 통상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법인의 지분 등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뒤 유상증자나 CB·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통해 자금을 늘린 뒤 신사업이나 테마를 태워 주가를 부양하는 패턴으로 진행된다. 주가를 띄우는 과정에서 신규사업 추가나 타법인 출자, 해외자금 유치 등의 내용을 담은 호재성 공시나 보도자료 배포가 이뤄지곤 한다. 일정 수준까지 주가가 올라가면 지분을 팔아치워 ‘엑시트(exit)’해 차익을 남기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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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사냥형 불공정거래’라는 단어가 금융당국 입에서 오르내린 건 올해 들어서다. 기존까지 무자본 M&A 외에는 이와 같은 행태를 설명하는 단어가 없었다. 그러나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 내에서 “투자자에게 보다 직관적으로 무자본 M&A를 통한 불공정거래 행태를 표현하는 개념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에서 올해 초 내부적으로 공모를 벌였고, 그 결과 한국거래소 등 금융당국은 ‘기업사냥형 불공정거래’라는 개념을 쓰기로 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무자본 M&A’는 가치 중립적인 느낌이 있는데다 직관적으로도 불법성을 포착하기 어려워 새로운 명칭을 모색할 필요가 있었다”며 “금융당국과도 ‘기업사냥형 불공정거래’라는 개념을 정립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기업사냥형 불공정거래는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조국 펀드’로 알려진 코링크PE가 더블유에프엠을 무자본 M&A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중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하긴 했지만, 더블유에프엠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금융업계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지난달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 국정감사를 통해 밝힌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5년간 총 34건의 무자본 M&A 관련 불공정거래, 즉 기업사냥형 불공정거래를 적발했다. 이 과정에서 시장 교란 행위자들이 거둔 부당이득은 3,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검찰·금융당국과 함께 처벌 방안 및 부당이득 환수 방안 등을 마련하는 동시에 공조체제를 갖춰 기업사냥형 불공정거래를 적극적으로 적발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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